'檢 공소장=사실관계 확인'이라며 동료 탄핵 촉구한 법관의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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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사실 여부를 엄격히 따져야 할 법관이 ‘검찰의 공소장은 사실관계를 확인한 것’이라고 표현한 것은 충격이다.”
중립적 판단해야 할 판사가 검찰 주장에 동조하다니…
"이해 못할 일" 내부서도 비판
고윤상 지식사회부 기자
지난달 19일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 회의록이 17일 실명으로 공개되자, 법조계에선 검찰 공소장으로 사실이 확인됐으니 (연루된 인사들을) 탄핵해야 한다고 주장한 한 법관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이날 회의에 참석한 판사들은 약 세 시간에 걸쳐 탄핵 촉구안 결의를 놓고 치열한 토론을 했다. 회의에서 남인수 서울중앙지방법원 제40민사단독 판사(44·사법연수원 32기)는 “2년 가까이 조사와 수사를 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기소됐고. 그 공소장에 의해 공식적으로 검찰에 의해 사실관계가 확인됐다”며 “일반 국민들은 도대체 어디까지 사실을 확인해야 (법관들이 탄핵에 대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느냐고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한 법관이 “사실관계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법원이 특정 행위를 규정해 헌법위반행위라고 선언하는 것은 섣부르다”는 의견을 내놓은 데 따른 반박이었다.
이날 회의에서 해당 안건에 찬성한 판사들도 사실관계가 확정됐다고 판단한 것은 아니었다. 의안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당시 법원행정처 관계자가 재판 절차에 개입하는 등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의혹에 대해 공식적인 헌법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실관계는 국회의 탄핵 심판 과정이나 법원의 재판 과정에서 밝혀져야 하기 때문이다.무엇보다 검찰 공소장은 검찰이 피의자를 기소하면서 적는 일방적 주장이다. 법관은 재판마다 검찰의 공소 내용을 놓고 사실관계를 엄격히 따져봐야 할 책임이 있다. 한 서울중앙지법 판사는 “검찰 공소장을 그대로 믿지 않는 게 법관의 기본 중 기본”이라며 “사실관계 확인이란 표현을 쓴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사안이 어떻고, 자기가 그 사안에 얼마나 빠져 있든 법관으로서 해야 할 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며 “일부 판사들이 탄핵을 추진하기 위해 무리한 수사를 동원하는 게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