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 개발 본격화…"수십억 달러 글로벌 시장 공략"

지놈앤컴퍼니·쎌바이오텍은 항암제 개발
비피도, 천랩 등도 관련 R&D에 박차
종근당·일동제약 등 대기업도 연구 시작

바이오協, 관련 기업 협의체 만들 예정
“2024년 94억달러 글로벌 시장 잡아라”
마이크로바이옴(체내 미생물) 기반 치료제를 연구하는 바이오벤처 지놈앤컴퍼니의 연구원이 실험을 하고 있다. 지놈앤컴퍼니 제공
국내 바이오기업이 마이크로바이옴(체내 미생물) 기반 치료제로 이르면 내년 초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임상시험 승인 신청을 한다. 국내 기업이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로 글로벌 임상 신청을 하는 건 처음이다.

다른 기업도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로 전임상을 하거나 특허 취득에 나서는 등 치료제 개발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기술특례 상장에 나서는 기업도 나오고 있다. 국내 바이오벤처 곧 임상 시작

지놈앤컴퍼니, 쎌바이오텍, 비피도, 천랩 등이 마이크로바이옴을 연구하는 주요 벤처기업으로 꼽힌다. 최근에는 종근당바이오, 일동제약 등 대기업도 관련 연구에 뛰어들었다.

지놈앤컴퍼니와 쎌바이오텍의 연구 분야는 항암제다. 지놈앤컴퍼니는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면역항암제로 전임상을 진행 중이며 이르면 내년 초 마무리할 전망이다. 박한수 지놈앤컴퍼니 연구소장은 “이르면 내년 2월에는 FDA의 임상 허가를 위한 신청 절차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적응증은 폐암 흑색종 대장암 등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쎌바이오텍은 대장암을 겨냥하고 있다. 김우경 쎌바이오텍 이사는 “유산균에서 분리한 정제 단백질이 대장암 치료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해 관련 특허를 취득했다”며 “내년 상반기에 임상 시약을 생산할 공장을 준공하고 하반기에 국내 임상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피도는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제로 전임상을 진행 중이다. 최근 마이크로바이옴 R&D 기업 가운데 최초로 코스닥 기술특례상장 심사를 통과했다. 미국에서도 특허를 출원한 상태다.

마이크로바이옴으로 치료제만 개발하는 게 아니다. 천랩은 마이크로바이옴 분석으로 질병을 미리 예측하고 관리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이를 위해 분당서울대병원 등과 협력해 마이크로바이옴 빅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종근당, 일동제약 등 대기업도 가세

대기업도 마이크로바이옴 연구 대열에 가세했다. 종근당바이오는 최근 프로바이오틱스와 마이크로바이옴 관련 생산시설을 갖추는데 285억원을 투자했다.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간질환 및 신장질환 치료제를 개발해 5년 내 상용화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프로바이오틱스는 체내 미생물을 기능성식품 등에 활용하는 것을, 마이크로바이옴은 치료제로 활용하는 것을 뜻한다.

일동제약은 정신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는데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하기 위한 기초연구를 하고 있다. 학계에서 최근 “장내 미생물이 내뿜는 물질이 기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 이를 검토 중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천랩과 마이크로바이옴 신약 개발을 위한 공동연구소(ICM)를 세웠다.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개발 경쟁은 뜨겁다. 글로벌데이터에 따르면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의 신약 후보물질(파이프라인)은 183개(지난 9월 기준)다. 하지만 허가를 받아 시판되고 있는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는 아직 없다.

임상 마지막 단계인 3상에 와 있는 후보물질은 5개다. 미국 에이오바이오미의 여드름 치료제, 미국 오셀의 요로감염 치료제, 스웨덴 옥스테라의 원발성 과옥살산뇨증 치료제, 미국 리바이오틱스의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감염 및 감염성 설사 치료제, 세레즈 테라퓨틱스의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감염 치료제 등이다. 업계에서는 내년에는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적응증도 확대되고 있다. 현재 주로 연구되고 있는 분야는 위장관 장애, 감염질환, 대사질환, 피부질환, 희귀병, 암 등이다. 최근에는 신경질환, 심혈관 질환, 염증 분야에서 기초연구를 하는 곳이 생겼다.
“韓 기업 연구역량 충분하다”

한국 기업의 마이크로바이옴 연구 역량은 어떨까. 한국바이오경제연구센터에 따르면 세계 마이크로바이옴 관련 논문 수(2016년 기준)는 약 7400편이다. 미국과 중국이 27.4%, 23%로 가장 많다. 다른 국가는 5% 이내다. 한국은 2.7%다. 아직 논문 수에서는 뒤떨어지지만 성장 잠재력은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국내에서는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 임상이 아직 없다. 임상 승인 신청을 하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어떤 기준으로 허가 여부를 검토할지 불확실한 상황이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인체 유래물이기 때문에 개인정보보호 등의 문제도 얽혀있어 이를 다루기 위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바이오협회는 마이크로바이옴을 연구하는 회원사로 구성된 회의체를 조만간 구성할 예정이다. 국내 마이크로바이옴 산업이 태동하고 있기 때문에 산업계가 선제적으로 나서서 관련 규정을 논의하자는 취지다. 임상 본격화에 앞서 관련 업계가 한 목소리를 내는 창구를 마련하겠다는 의도도 있다.김지현 한국바이오협회 선임연구원은 “마이크로바이옴은 신경질환, 심혈관질환, 암, 당뇨병, 대사질환 등 비감염성 질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치료 기간이 길고 의료비 부담이 큰 만성질환에 마이크로바이옴의 역할이 밝혀진다면 의료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