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화웨이 보안 리스크' 대비책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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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로 상징되는 中 기술굴기 견제하는 美지난 1일, 캐나다 밴쿠버 공항으로 입국하던 멍완저우 중국 화웨이 부회장 겸 최고재무책임자가 캐나다 당국에 체포됐다. 화웨이 창업자 런정페이의 딸이기도 한 멍완저우는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 조치를 위반했다는 죄목으로 지난여름 미국 뉴욕법원이 체포영장을 발부한 상태였다. 캐나다 정부가 그녀를 인도해 달라는 미국 요청을 수락한 것이다. 홍콩을 출발해 밴쿠버를 경유, 멕시코로 향하던 멍완저우의 일정은 중단됐다. 멍완저우는 내년 2월 캐나다 법정에서 미국 인도 여부 판결을 기다려야 하는 운명에 처했다.
서방 동맹국은 화웨이 5G 장비 배제하는데
정부와 기업, 中 장비 불안 해소에 나서야
최병일 < 이화여대 교수·경제학 >
멍완저우가 밴쿠버 공항에서 체포되던 그 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미·중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었다. 화웨이의 실질적 후계자의 체포 사태는 미·중 무역전쟁의 본질이 기술패권 경쟁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1987년 창업 30년 만에 세계 최고 통신기업으로 수직 상승한 화웨이는 ‘중국을 위한다’는 ‘화웨이(=華爲)’란 기업 명칭에서부터 국수주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인민군 장교 출신인 런정페이의 경력, 그래서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중국 정부 및 공산당과의 유착 관계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기업이다. 화웨이가 자력으로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화웨이는 중국 시장을 넘어 세계 시장을 공략하고, 나아가 선진국 시장에까지 진입하려고 전력을 경주하고 있다. 세계 주요 공항을 도배한 화웨이 광고는 이제 눈에 익숙하기까지 하다. 화웨이의 야심은 디지털 혁명을 주도할 5세대(5G) 이동통신에서 선두주자가 되는 것이다. 통신 후발주자인 중국이 5G 선도 경쟁에 뛰어들었다는 것은 미국, 한국, 독일, 일본 등 민주국가 진영 간 기술경쟁이 정치체제가 다른 경제체제 간 경쟁으로 판도가 변화했음을 의미하는 세계사적인 사건이다.
미국 하원 정보위원회가 2012년 발간한 ‘중국 통신업체 화웨이와 ZTE가 미국 국가 안보에 끼칠 영향에 대한 조사 보고서’는 화웨이, ZTE가 중국 정부와 당의 지시를 따르며, 산업 기밀을 훔치고, 지식재산권을 침해하며, 적성국과 수상한 거래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화웨이 배후에 드리운 중국 공산당의 짙은 그림자에서 보안 리스크를 감지한 미국은 화웨이 장비 사용 금지령을 내렸다. 호주, 뉴질랜드, 영국, 일본 등 동맹국들이 이에 동참하면서 화웨이의 세계 전략에 빨간불이 켜졌다. 그런데 그 화웨이가 이미 한국에 입성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의 스마트폰은 화웨이 장비를 통해 연결되고 있다.SK텔레콤, KT와의 경쟁에서 열세에 처해 있는 LG유플러스에 화웨이의 저가 공세는 거부할 수 없는 것이었을까. LG가 2013년 화웨이 장비를 선택한 것은 미국의 동맹국가 중 대형 통신 사업자로서는 최초였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보안 문제를 제기했고, 이 때문에 수도권 등 주한미군 기지 근처 기지국에는 화웨이 장비를 설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LG유플러스는 5G에서도 화웨이 장비를 도입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돈이 얼마가 들든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에 진입해 자신들의 제품이 선진 민주국가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입증하고, 여세를 몰아 다른 서구 민주국가에도 진입하려는 것이 화웨이의 전략임을 알 수 있다.
LG의 행보는 논란의 대상이다. 중국에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는 기업으로서는 중국 장비 사용의 전략적 장점이 부각됐을 수 있으나, 만약 보안 리스크가 현재화된다면 그 부담은 한 개 기업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설 것이다.이쯤 되면 지금의 통신서비스 시장의 경쟁 구도가 진정 소비자 이익을 위한 것인지, 국익에는 도움이 되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중국 경제체제란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는 기업들의 전략적 무모함이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몇 차례 위기 국면에서 경험했던,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가 다시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지 않을지 우려된다.
정부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묻고 싶다. 손실의 사회화란 도덕적 해이를 방조하는 것은 아닌지, 한국을 추월하려는 중국의 기술굴기를 극복할 수 있는 안보 및 산업을 아우르는 국가 전략은 있는지, 그것이 정말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