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사 6개월 넘지 말라는 인권위 권고에 "이적사범 잡지 말라는 소리" 일선 경찰 반발

국가인권위원회가 20일 경찰의 자의적인 내사활동에 따른 인권침해 방지를 위해 법률에 관련 근거를 마련할 것을 민갑룡 경찰청장에게 권고했다. 인권위는 내사가 6개월을 넘길 때는 특별한 사유를 예시하고 검토하는 등 요건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경찰개혁위원회가 작년 말 내놓은 권고에 따라 경찰 내사는 6개월이 원칙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밝히기 위한 내사가 통상 2~3년 걸리는 등 현실적인 걸림돌이 적지 않아 일선 경찰관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재야민주화운동 활동가인 윤모 씨는 경찰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2011년부터 자신에 대한 내사를 진행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넣었다. 윤 씨는 경찰이 2014년 블로그, 카페, 이메일 등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벌인 결과 혐의점을 찾지 못했지만 사건을 종결하지 않고 자신의 주변 친·인척까지 범위를 넓혀 내사를 장기간 지속 확대해왔다고 주장했다.인권위는 이 같은 경찰의 내사가 헌법에서 보장하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인권위 측은 “내사가 길어지는 관행이 방치되면 인권침해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일선 경찰관들은 “국가보안법 수사 현실과 따로 노는 권고”라는 반응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적성 표현물 등 국가보안법 위반여부는 강력사건처럼 파헤친다고 혐의가 바로 드러나는 게 아니다”며 “오랜 기간 지켜봐야 실체가 드러나는 범죄이기에 내사에 수 년이 걸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정보원이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해 벌인 내사가 대표적 사례다. 2010년 처음 내사에 착수한 뒤 2013년이 되어서야 내란 선동 혐의를 밝혀냈다. 2010년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행사에서 자신이 창작한 북한찬양 시를 낭송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2016년 유죄 판결받은 황선 씨에 대해서도 경찰 내사가 3년 이상 걸린 것으로 전해졌다. 한 일선 경찰관은 “인권위 권고대로라면 6개월 안에 혐의가 밝혀지지 않을 때 내사를 종결하거나 재심사받아야 한다”며 “이 기준에 맞추면 사실상 이적사범은 잡기 어려워진다”고 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