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만 해도 전기가 만들어지네…IoT 시대 유용한 '에너지 하베스팅'

과학 이야기

버려지는 에너지, 전기로 전환
집이나 사무실 조명서 나온 빛
車·비행기 움직일 때 발생하는 진동
저전력 IoT 기기에 쓰일 수 있어
작년 시장 규모 3억8820만弗

들쑥날쑥한 출력 극복이 난제
KAIST "웨어러블 기기에 쓰려면 에너지 효율 10배쯤 높여야"
이달 초 아랍에미리트(UAE) 수도 아부다비의 공항에 흥미로운 시설이 들어섰다. 공항 터미널을 잇는 통로 바닥을 압전판으로 메운 것. 사람들이 통로 바닥을 밟으면 압력 에너지가 전기로 바뀐다. 공항 내부에 설치된 대형 화면으로 얼마만큼의 전기가 만들어졌는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전광판을 구동하는 에너지 중 일부도 압전판을 통해 공급한다는 게 공항 측 설명이다. 알사미시 아부다비공항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도시를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들을 홍보하기 위해 압전판 통로를 설치했다”고 말했다.
“에너지의 70~80%는 버려진다”버려지는 에너지를 전기로 바꾸는 ‘에너지 하베스팅(energy harvesting)’ 기술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사물인터넷(IoT) 센서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외부로 새어나가는 에너지를 회수해 활용하려는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허청에 따르면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등록된 특허는 1370건이었다. 2014년 이후엔 연평균 150건 안팎의 특허가 등록되고 있다.

아부다비공항처럼 마케팅 차원에서 에너지 하베스팅 설비를 구축하는 곳도 늘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 리서치앤드마켓에 따르면 지난해 에너지 하베스팅 시장 규모는 3억8820만달러(약 4360억원)였으며 2023년까지 연평균 10.8%씩 성장할 전망이다.

에너지 하베스팅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54년이다. 미국 벨연구소가 태양전지 기술을 공개하면서 버려지는 에너지를 ‘수확(harvest)’한다는 표현을 썼다. 버려지는 에너지는 다양하다. 집이나 사무실에 켜 놓은 조명에서 나온 빛, 우리가 한 걸음씩 걸을 때 발바닥이 바닥을 누르는 압력, 자동차나 비행기 등이 움직일 때 발생하는 진동과 열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대부분의 기계나 중장비는 버려지는 에너지가 활용하는 에너지보다 많다. 자동차가 실제 운행에 쓰는 에너지는 연료로 집어넣은 휘발유의 20%에 미치지 못한다. 60% 이상이 엔진과 배기가스의 열 형태로 공기 중에 배출되기 때문이다.

에너지 하베스팅은 이렇게 의미 없이 새어나가는 에너지 중 일부라도 재활용할 수 없을까 하는 발상에서 시작됐다. 지금까지는 만들어지는 전기가 미미해 활용처가 마땅치 않았지만 저전력 IoT가 대중화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센서가 스스로 전기를 조달하도록 설계하면 배터리를 일일이 교체해야 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워치에 쓰려면 효율 더 높여야에너지 하베스팅 기기들이 활용하는 에너지원은 빛과 압력, 열, 전자기 등이다. 빛을 활용한 에너지 하베스팅 기기 중에선 윤의식 미국 미시간대 교수가 개발한 이미지 센서가 널리 알려져 있다. 자체적으로 전기를 조달하는 폭 1㎜ 미만의 센서가 초당 7~15장의 이미지를 촬영한다. 이 센서가 상용화되면 전력 없이 스스로 동작하는 감시 카메라 등을 만들 수 있다.

압력도 에너지 하베스팅 연구자들이 널리 활용하는 에너지로 꼽힌다. 압력을 전기로 바꿔주는 압전체를 활용하는 데 납, 질콘 티타늄 등으로 만든 PZT라는 무기화합물이 널리 쓰인다. 최근 환경 문제에 대한 규제가 늘어남에 따라 납을 사용하지 않는 압전 소재 개발이 활발하다.

신소재를 에너지 하베스팅에 적용한 사례들도 있다. 김선정 한양대 전기생체공학부 교수는 탄소나노튜브를 꼬아 만든 실을 개발해 지난해 8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게재해 호평을 받았다. 전해질 속에 이 실을 넣고 움직임을 가하면 실에서 전기가 만들어진다. 김 교수는 이 소재로 ‘자가발전 구조신호장치’를 만들기도 했다. 바다에 빠지면 이 장치가 GPS 위치를 전송한다. 이 제품은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쇼(CES) 2018에서 웨어러블 기술 부문 혁신상을 받았다.에너지 하베스팅의 대중화 속도는 기대만큼 빠르지 않다. 가장 큰 단점은 들쑥날쑥한 출력이다. 태양광 전지는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 무용지물이 된다. 압전판 역시 사람이나 자동차가 충분히 지나가지 않는 시점엔 필요한 만큼의 전기를 만들어낼 수 없다. 에너지 전환 효율 역시 만족스러운 수준이 못 된다는 지적이다.

조병진 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는 “현재 시점에서 채산성이 있는 제품은 공장의 폐열을 이용한 에너지 하베스팅 설비, 24시간 착용해야 하는 의료용 센서 정도”라며 “스마트워치처럼 디스플레이가 달린 웨어러블 기기에 적용하려면 에너지 효율을 10배쯤 높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