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끌어오면 베팅액의 30%"…판치는 불법 사이버도박

경찰팀 리포트
'합법 게임' 가장…勢 불리는 불법 도박사이트 세계

온라인 도박 판돈 兆단위 규모
기업형으로 운영…수법도 진화
'점조직화'로 경찰 수사망 피해…정부 '느림보 단속'에 활개

일반인 모집책 뽑아 인센티브
오프라인·블로그·문자 등 활용
실장격인 모집책의 수수료는 고객 베팅액 많을수록 늘어

불법 도박 시장 총 84조 추정
청소년 도박 중독자 급증 추세…스마트폰 불법도박 82% 차지
도박용 확률형 게임 늘지만 사이트 차단 등 단속 제약 많아
“‘스포X’는 게시글 작성 포인트로만 운영되는 비영리 스포츠베팅 사이트입니다.”

21일 한 불법 온라인 도박사이트에는 이 같은 안내 문구가 크게 내걸려 있었다. 실제 돈이 오가지 않는 합법적인 게임 사이트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사이트의 한 귀퉁이에 ‘환전을 원하시면 카톡아이디 등록하세요’란 글귀가 눈에 띄었다. 기자가 아이디를 등록하고 운영자에게 말을 걸었더니 “포인트 매입 땐 1000만 포인트당 8000원, 매도 시엔 7500원으로 계산해 현금을 계좌이체해준다”는 답이 돌아왔다. 현금을 계좌로 부쳤더니 한 개의 게시글을 작성하지 않았는데도 포인트가 즉시 충전됐다.
이곳에서 즐길 수 있는 도박 게임은 ‘파워볼’이다. 무작위로 뽑혀 나온 공 여섯 개에 쓰인 숫자를 합산해 홀짝이나 (특정 숫자 대비) 위아래 등을 맞추는 게임이다. 회차당 최대 15만원까지 베팅할 수 있다. 운이 좋았는지 판돈 2만원으로 시작한 게임에서 단 2분 만에 9만원을 땄다. 운영자에게 환금을 요청하자 즉시 입금됐다.

이처럼 스포츠베팅을 가장해 온라인 도박을 제공하는 사이트는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이트를 운영하는 일당은 ‘점조직화’하거나 ‘치고 빠지기’ 작전으로 경찰 수사를 요리조리 피한다. 도박성 게임을 사전에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고, 사이트 주소 하나를 차단하는 데만 최소 2주일이 걸리는 정부의 ‘느림보 행정’이 문제라는 지적이다.진화하는 불법 온라인 도박조직

경찰청에 따르면 파워볼 게임으로 불법 도박사이트를 운영한 일당이 지난 10월 검거됐다. 이들이 끌어모은 판돈만 2조7000억원, 순이익은 1350억원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검거된 불법 온라인 도박사이트의 규모는 거의 조 단위”라며 “기업형으로 운영하다 보니 경찰 수사를 피하기 위한 수법도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기업형 불법 온라인 도박조직은 △도박 게임 개발 및 도박사이트 관리 △콜센터 운영 △서버 관리 △회원 모집 △수익금 배분 등으로 나뉜다. 이들 조직은 일반인을 상대로 회원 모집책을 선발하고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고객을 늘리고 있다. 흔히 실장으로 불리는 모집책은 오프라인이나 문자, 블로그 등을 통해 활동한다. 실장에게 지급되는 수수료는 적게는 베팅액의 20%, 많게는 40%다. 실장이 데려온 고객의 베팅액이 많아질수록 수수료가 오르고 다른 회원의 개인정보까지 제공받는다.
한 도박사이트 관계자는 “일반인 휴대폰 번호는 건당 10~20원 수준이지만 ‘에끼스’로 분류되는 상습 도박자는 10배가량 많은 150원 선에서 거래된다”고 전했다. 다른 도박사이트 관계자는 “본사 서버가 외국에 있기 때문에 잡히는 경우는 절대 없다”고 강조했다.

도박조직이 철저히 점조직으로 운영되는 탓에 일부 모집책이나 중간 관리자가 본사로부터 사기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한 전직 사이트 관리자는 “관리비 및 베팅액으로 30억원을 계좌에 넣어놨는데 어느날 갑자기 본사에서 ‘고객들이 게임을 잘해 적립금이 동났다’고 해서 빈털터리가 된 적도 있다”며 “계좌번호 등 핵심 정보를 모두 본사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모집책이나 운영자도 사기를 당하기 쉬운 구조”라고 했다.불법 도박조직 본사는 관련 규제 법령이 없거나 뇌물 공여가 잦은 중국, 동남아시아 쪽에 몰려 있다는 게 전직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관계자는 “경찰이나 사감위 단속 직원이 출국하는 즉시 현지 경찰을 통해 불법 도박 조직원들이 출동 사실을 파악한다”고 토로했다.

최근에는 해외에 있는 이들 본사에도 ‘바지 사장’을 앉혀 놓은 사례가 적지 않다. “공짜로 월급을 준다”며 현지인이나 한국인을 설득해 법인 대표로 등록하는 방식이다. 서울 구로동 가리봉동 등지에는 중국에서 불법 도박으로 긴급 체포된 바지 사장을 빼내는 전문 법률사무소도 영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규모 84조원, 단속은 3% 미만

사행산업통합감독위에 따르면 한국의 불법 도박시장 총 매출은 연간 83조7822억원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스포츠베팅이 67%로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찰에 검거된 불법 도박사이트의 규모는 2013년 기준 2조9000억원에 그쳤다.

불법 도박이 최근 모바일로 옮겨가면서 청소년 도박 중독자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 지난해 스마트폰으로 불법 도박을 이용한 비율은 82.7%에 달했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에 따르면 10대 청소년 중 3만 명이 도박 고위험군에 속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경찰은 사행성을 부추기는 합법적인 도박 게임이 적지 않아 불법 시장을 키우는 자양분이 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게임물관리위원회가 도박용으로 제작된 확률형 게임조차 제대로 걸러내지 못해 불법 온라인 도박사이트에서 대거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찰 단속 및 수사 과정에도 제약 조건이 많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확인된 불법 도박사이트 주소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거쳐 차단하는 데만 거의 한 달이 걸린다는 게 경찰의 하소연이다. 채증을 위해 수사관이 직접 아이디를 만들어 도박 혐의를 입증하는 ‘위장수사’조차 허용되지 않고 있다.사이트에서 활동하는 아이디 소유자의 인적 사항과 계좌번호까지 확인해야만 정식 수사로 전환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런 탓에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가 경찰에 수사 의뢰를 한 사례는 지난해 달랑 3건에 불과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