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CEO부터 은행 임원까지…금융계에서 커지는 여성 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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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에 ‘여풍(女風)’이 거세게 불고 있다. 견고했던 ‘유리천장(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깨지고 있다. KB금융이 증권업계 첫 여성 사장을 배출한 데 이어 신한금융과 우리금융도 여성 임원(부행장·부행장보) 발탁 소식을 내놓고 있다. 이번 여풍은 지나가는 바람에 그치지 않을 거란 게 금융계의 시각이다. 한 은행 고위관계자는 “1980년대 이후 대거 입사했던 여직원들이 30여년간 능력을 인정받으며 고위직에 오르고 있다”며 “뛰어난 여성 인력 풀이 넓어졌기 때문에 금융계 여성임원 비율은 앞으로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업계 최초 여성 CEO 탄생박정림 국민은행 부행장은 지난 19일 KB증권 사장으로 내정됐다. 이달 말 주주총회를 거쳐 최종 선임되면 그는 국내 증권업 역사상 첫 여성 최고경영자(CEO)가 된다.
박 내정자는 KB금융그룹에서 화통한 성격과 꼼꼼한 업무관리로 무장한 여걸로 불린다. 서울대 경영대를 졸업한 뒤 체이슨맨해튼, 정몽준 의원실 비서관, 조흥은행, 삼성화재 등을 거치며 쌓은 국내외 인맥도 화려화다. 2004년 국민은행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리스크관리 및 자산관리(WM) 전문가로 고속 승진하며 ‘유리 천장’을 차례로 깨부셨다. 지난해 1월부터는 KB금융지주 총괄부사장, 국민은행 부행장, KB증권 부사장 등 3개 법인의 WM 사업 총괄 임원을 겸직할 정도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았다. 박 내정자는 “여자여서 못 한다는 소리를 들어선 안 된다는 책임감이 크다”며 ”여자들은 시키는 일은 잘하는데 배짱이 약하다는 인식을 깰 수 있도록 계속 새로운 도전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여풍의 주역들이 삭풍을 견디며 성장해왔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금융계에서 여성들은 찬밥 신세였다. 1976년에 들어서야 여성 직원은 입사할 때 ‘결혼하면 퇴직한다’는 각서가 은행에서 사라졌고, 이듬해 대졸신입 공채시험에서 남녀 구분이 사라졌다. 1978년 입행한 권선주 전 기업은행장이 여성 최초로 은행장에 오르고 같은해 입행한 김해경 KB신용정보 사장이 KB금융그
룹 최초의 여성 CEO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영업력 인정받아 유리천장 깨트려고졸 출신 여성 은행원은 좀 더 어려운 여건을 이겨내야 했다. 왕미화 신한은행 부행장보(부산진여상), 조경선 신한은행 부행장보(영등포여상)는 신한은행 출신 첫 여성임원 자리에 올랐다. 과거 은행은 고졸 남성이 응시하는 ‘초급행원’과 구분해 고졸 여성을 ‘여행원’으로 채용했다. 임금이 적고 승진에서도 차별을 당했다. 여행원제가 사라진 건 1993년 들어서다. 여행원으로 입사한 상고 출신 여성임원들은 남직원과 같은 호봉을 받기 위해 ‘전환고시’라는 까다로운 시험을 통과했다.여성 임원들은 능력으로 편견을 뛰어 넘었다. 정종숙 우리은행 부행장은 한경머니와의 인터뷰에서 “차별화된 영업력을 인정받은 것이 승진의 비결 아니겠냐”며 “영업본부장 때에는 KPI 전국 1위를 3회 연속 달성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전히 금융계에 ‘유리천장’이라는 말이 있지만 능력 있는 여성 후배들이 약진하고 있다”며 “우리은행 임원의 절반 이상을 여성들이 차지할 날도 머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왕 부행장보는 신한은행 첫 여성 PB팀장이다. 강남PB센터에서 4명의 PB팀장 중 유일한 여성이었던 그에게 신규 고객이 찾아오지 않았다. 남성 PB가 왠지 더 신뢰가 간다는 편견은 고액자산가들일 수록 더욱 심했다. 팀장 데뷔후 3년이 지난 2006년 그가 다루는 자산은 어지간한 지점의 운용 규모와 맞먹는 2000억원에 달했다. 연평균 50~60%에 이르는 수익률을 올렸기 때문이다. 왕 부행장보는 “남과 다른 차별화 전략을 내세웠던 것이 좋게 평가를 받은 것 같다”며 “오로지 남자들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편협한 마음으로 직장생활을 했던 때도 있었지만, 후배들이 성별이 아닌 능력으로 승부하면서 균형적인 감각과 마음의 여유를 갖고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울 생각”이라고 했다.
금융그룹들도 여성 리더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신한금융은 지난 3월 그룹 차원에서 여성리더 프로그램인 ‘신한 쉬어로즈’를 출범해 여성을 특정 업무에 배치하는데 대한 어려움,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 경력단절 등을 문제로 보고 여성 인재 육성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국민은행도 사내 연수나 특정 부서 전입 공모시 여성을 우대하고 있다. 조 부행장보는 “멘토링을 한 후배들이 또 멘토가 돼 후배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
◆증권업계 최초 여성 CEO 탄생박정림 국민은행 부행장은 지난 19일 KB증권 사장으로 내정됐다. 이달 말 주주총회를 거쳐 최종 선임되면 그는 국내 증권업 역사상 첫 여성 최고경영자(CEO)가 된다.
박 내정자는 KB금융그룹에서 화통한 성격과 꼼꼼한 업무관리로 무장한 여걸로 불린다. 서울대 경영대를 졸업한 뒤 체이슨맨해튼, 정몽준 의원실 비서관, 조흥은행, 삼성화재 등을 거치며 쌓은 국내외 인맥도 화려화다. 2004년 국민은행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리스크관리 및 자산관리(WM) 전문가로 고속 승진하며 ‘유리 천장’을 차례로 깨부셨다. 지난해 1월부터는 KB금융지주 총괄부사장, 국민은행 부행장, KB증권 부사장 등 3개 법인의 WM 사업 총괄 임원을 겸직할 정도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았다. 박 내정자는 “여자여서 못 한다는 소리를 들어선 안 된다는 책임감이 크다”며 ”여자들은 시키는 일은 잘하는데 배짱이 약하다는 인식을 깰 수 있도록 계속 새로운 도전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여풍의 주역들이 삭풍을 견디며 성장해왔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금융계에서 여성들은 찬밥 신세였다. 1976년에 들어서야 여성 직원은 입사할 때 ‘결혼하면 퇴직한다’는 각서가 은행에서 사라졌고, 이듬해 대졸신입 공채시험에서 남녀 구분이 사라졌다. 1978년 입행한 권선주 전 기업은행장이 여성 최초로 은행장에 오르고 같은해 입행한 김해경 KB신용정보 사장이 KB금융그
룹 최초의 여성 CEO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영업력 인정받아 유리천장 깨트려고졸 출신 여성 은행원은 좀 더 어려운 여건을 이겨내야 했다. 왕미화 신한은행 부행장보(부산진여상), 조경선 신한은행 부행장보(영등포여상)는 신한은행 출신 첫 여성임원 자리에 올랐다. 과거 은행은 고졸 남성이 응시하는 ‘초급행원’과 구분해 고졸 여성을 ‘여행원’으로 채용했다. 임금이 적고 승진에서도 차별을 당했다. 여행원제가 사라진 건 1993년 들어서다. 여행원으로 입사한 상고 출신 여성임원들은 남직원과 같은 호봉을 받기 위해 ‘전환고시’라는 까다로운 시험을 통과했다.여성 임원들은 능력으로 편견을 뛰어 넘었다. 정종숙 우리은행 부행장은 한경머니와의 인터뷰에서 “차별화된 영업력을 인정받은 것이 승진의 비결 아니겠냐”며 “영업본부장 때에는 KPI 전국 1위를 3회 연속 달성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전히 금융계에 ‘유리천장’이라는 말이 있지만 능력 있는 여성 후배들이 약진하고 있다”며 “우리은행 임원의 절반 이상을 여성들이 차지할 날도 머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왕 부행장보는 신한은행 첫 여성 PB팀장이다. 강남PB센터에서 4명의 PB팀장 중 유일한 여성이었던 그에게 신규 고객이 찾아오지 않았다. 남성 PB가 왠지 더 신뢰가 간다는 편견은 고액자산가들일 수록 더욱 심했다. 팀장 데뷔후 3년이 지난 2006년 그가 다루는 자산은 어지간한 지점의 운용 규모와 맞먹는 2000억원에 달했다. 연평균 50~60%에 이르는 수익률을 올렸기 때문이다. 왕 부행장보는 “남과 다른 차별화 전략을 내세웠던 것이 좋게 평가를 받은 것 같다”며 “오로지 남자들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편협한 마음으로 직장생활을 했던 때도 있었지만, 후배들이 성별이 아닌 능력으로 승부하면서 균형적인 감각과 마음의 여유를 갖고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울 생각”이라고 했다.
금융그룹들도 여성 리더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신한금융은 지난 3월 그룹 차원에서 여성리더 프로그램인 ‘신한 쉬어로즈’를 출범해 여성을 특정 업무에 배치하는데 대한 어려움,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 경력단절 등을 문제로 보고 여성 인재 육성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국민은행도 사내 연수나 특정 부서 전입 공모시 여성을 우대하고 있다. 조 부행장보는 “멘토링을 한 후배들이 또 멘토가 돼 후배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