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레이더 갈등'…日 "몇분간 겨냥"·韓 "위협행위 안해"

軍 "日초계기 접근하자 촬영용 광학카메라 운용…빔 방사 안해"
사격통제레이더 대함용으로 가동…日초계기, 우리 함정 위로 '위협비행'
日 '의도있었다' 의심하며 비난…'감정싸움'우려속 24일 한일국장급협의 주목
지난 20일 우리 군이 동해 중간수역에서 북한 조난 선박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함정 레이더 가동 문제로 한일 양국이 사흘째 갈등을 빚고 있다.군 당국은 북한 선박 구조 당시 우리 해군 함정이 일본 해상자위대 P-1 초계기를 향해 위협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반면 일본 정부와 언론은 공격용 레이더를 여러 차례 겨냥했다면서 '의도적 행위'였다는 의심을 제기하고 있다.

위안부 화해·치유재단 해산과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등으로 악화한 양국 간 갈등의 골이 군사 분야로 비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24일 서울에서 열리는 한일 외교부 국장급 협의에서 '레이더 갈등'도 거론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이번 갈등이 확전으로 가느냐 진정 국면으로 가느냐는 주초에 가닥이 잡힐 전망이다.◇우리군이 설명하는 경위…"北조난선박 찾으러 레이더 풀가동…위협행위 없었다"=
복수의 군 소식통은 23일 "(지난 20일) 동해에서 조난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축함 광개토대왕함이 선박 수색을 위한 매뉴얼대로 항해용레이더와 사격통제레이더를 풀 가동하고 있었다"면서 "이후 일본 해상초계기가 우리 함정 쪽으로 접근해오자 광학카메라를 운용했다"고 밝혔다.

광개토대왕함은 독도에서 동북방 180여㎞ 떨어진 대화퇴어장 인근 한일 중간수역에서 조난한 북한 선박 수색작전 임무를 수행했다.

항해용레이더는 어선과 상선, 군함 등을 식별하는 데 이용된다.사격통제레이더는 원거리에 있는 해상의 물체를 더 정확하게 식별하도록 도움을 준다.

당시 사격통제레이더는 대공용이 아닌 대함용 모드로 운용했다고 해군 측은 설명했다.

당시 광개토대왕함은 빠르게 접근하는 일본 초계기를 식별하고자 영상 촬영용 광학카메라를 켰다.광학카메라는 추적레이더와 붙어 있어 카메라를 켜면 이 레이더도 함께 돌아간다.

군 소식통은 "스티어(추적레이더)가 함께 돌아갔지만, 초계기를 향해 빔은 방사하지 않았다"면서 "실제로 일본 해상초계기를 위협한 행위는 없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다.

◇日 "韓, 공격용 레이더로 수분간 겨냥"…'의도있었다' 의심 = 그러나 일본 정부와 언론은 사흘째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일본 정부 당국은 21일 외교 경로를 통해 한국 측에 항의했고, 23일 일본 언론은 '한국 함정이 공격용 레이더로 자위대 초계기를 몇분간 여러 차례나 겨냥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측은 우리나라가 조난 어선을 수색하던 중이었음은 사실로 보면서도 화기관제 레이더 전파를 초계기로 겨냥한데는 수색 목적 이외의 '다른 의도'가 있다는 의심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요미우리신문은 "지난 20일 오후 3시께 노토(能登)반도 앞 동해상을 비행하던 해상자위대 P-1 초계기 승조원이 레이더를 쏜 한국 광개토대왕함에 '화기 관제 레이더를 포착했는데, 어떤 의도냐'고 무선으로 물었지만, 반응이 없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해상자위대 초계기는 당시 동해의 일본 측 배타적경제수역(EEZ) 상공을 비행 중이었다고 주장했다.

비행 중 레이더 경보음이 기내에서 울려서 해상자위대 초계기는 방향을 돌렸지만, 그 이후에도 몇분간에 걸쳐 여러 차례 초계기를 향해 레이더 조준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신문은 "화기관제 레이더에서 '록온(무기 조준까지 한 상태)'하는 것은 무기 사용에 준하는 행위로 간주된다"며 "유사시 미군은 공격에 나섰을 것"이라는 자위대 관계자의 발언까지 전했다.

또 야마다 히로시(山田宏) 방위정무관(차관급)은 트위터에 "우리나라를 위협하고 자위대원의 생명을 위험에 처하게 한 행위로 용서하기 어렵다"며 "내 편으로 생각했더니 뒤에서 총을 쏘는 행위"라고 우리나라를 비난했다.

다른 자위대 간부는 산케이신문에 "명확한 적대 행동"이라며 "이대로는 우호국으로서 잘 지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극우 성향인 산케이는 사설을 통해서는 "마치 적성 국가의 소행 아니냐. 반일행위가 이 이상 계속되면 한국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폈다.

◇우리 군의 재반박…"오히려 日초계기가 우리 함정 위로 '위협비행'"= 우리 군의 설명을 들어보면 일본 측의 이런 주장은 사실관계에 부합하지 않으며 다분히 감정이 섞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 광개토대왕함은 조난한 어선을 빨리 찾기 위해 사격통제레이더를 애초부터 가동하고 있었고, 나중에 일본 초계기가 함정 쪽으로 접근하자 식별을 위해 영상 촬영용 광학카메라를 운용했다는 것이다.

이때 추적레이더가 함께 돌아가는 데 레이더 빔을 전혀 방사하지 않았다는 것이 군 당국의 설명이다.

애초부터 무기 사용 의도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행위였다는 것이다.

군 관계자는 "한국 해군이 조난 선박을 탐색하기 위한 인도주의적 작전을 했다고 설명했고 일본도 그 내용을 알면서도 계속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대화퇴어장 등 공해상에서 한국 해군 활동을 제약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오히려 일본 초계기가 우리 함정 위로 비행하는 등 '위협비행'을 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군 관계자는 "일본 초계기는 우리 함정이 수색구조 작전 임무를 시작하고 한참 뒤에야 접근해 왔다"면서 "우리 함정 위로 비행하는 등 오히려 더 위협적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또 일본 측은 초계기 승조원이 광개토대왕함을 향해 무선으로 화기 관제 레이더를 작동한 의도를 물었다고 했지만, 당시 초계기는 국제상선공통망을 이용해 해경을 호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 관계자는 "일본 초계기는 국제상선공통망으로 해경을 호출했으며 통신감도(感度)도 매우 낮았다"면서 "우리 함정에서는 해경을 부르는 것으로 인식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자위대 최고위 간부 출신인 일본의 극우 성향 논객도 일본이 크게 문제를 삼을 만큼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다모가미 도시오(田母神俊雄) 전 자위대 항공막료장(우리의 공군참모총장격)은 지난 21일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당시 주변에 다른 항공기가 있었더라도 레이더 전파를 받았을 것"이라며 "미사일 발사를 위해서는 함정 내 복수 부서에서 동시에 안전장치를 해제해야 하므로, 화기관제 레이더 전파를 받았다고 해서 곧바로 위험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한편, 통일부는 동해상 조난 선박에서 구조한 북한 주민 3명과 시신 1구를 22일 오전 11시께 판문점을 통해 북측에 송환했다고 밝혔다.정부는 21일 대한적십자사(한적) 회장 명의로 북측에 북한 주민과 시신 인도 통지문을 보냈고, 북측이 이를 받아들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