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해안 수십㎞ 곳곳 잔해 뒤덮여…인니 순다해협 쓰나미 현장

해변서 수십m까지 건물 무너져…파도에 휩쓸렸던 시신 떠밀려와
"피해주민 다수 무허가 가건물 거주…주택재건 지원 배제 우려"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가랑비가 내리는 해안도로를 달려 도착한 인도네시아 순다해협 주변 해안은 초강력 태풍이 휩쓸고 간 자리를 방불케 했다.

수도 자카르타에서 100여㎞ 거리로, 주말 휴양지로 인기가 높았던 해변은 온통 잔해로 뒤덮였고, 에메랄드빛이었던 바다는 흐린 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 지역에는 지난 22일 밤 최고 3m의 쓰나미가 덮쳤다.3개월 전 술라웨시 섬 팔루 지역을 덮쳤던 쓰나미(약 7m)에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편이지만, 최대피해 지역 중 하나인 짤리따 해변에선 바다에서 멀게는 20∼30m 이상 떨어진 건물도 피해를 면하지 못했다.

팔루 시내와 주변 지역에 피해가 집중됐던 술라웨시 강진·쓰나미와 달리 순다해협 일대 해안 거의 전역에서 피해가 발생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피해 범위와 규모가 전혀 덜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 짤리따 해변에서 역시 피해가 큰 지역으로 꼽히는 탄중 르숭 해변까지 해안을 따라 약 50㎞를 이동하는 동안 살펴본 바닷가는 곳곳이 폐허였고, 밀려온 바닷물조차 다 빠지지 않은 상태였다.
일부 지역에선 파도에 뒤집힌 작은 선박들이 물에 잠긴 채 뒹굴고 있었고, 뭍으로 끌어올려 보관하던 요트 5∼6대가 옆으로 쓰러진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건물 잔해더미에 앉아 있던 현지인 남성 사바르(39)는 "찔레곤에서 건축 일을 하다가 친구가 사는 동네가 쓰나미에 휩쓸렸다고 해서 왔다"고 말했다.

사바르는 "여기 무너진 잔해들이 친구가 살던 집"이라면서 "다행히 잔해에 깔려 있지는 않았지만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어 큰일"이라고 털어놨다.현지 주민인 간자르 카르니아완(17)은 "작년에도 쓰나미가 왔지만, 그때는 규모가 작아 별 피해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집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자원봉사활동에 나선 수의사 루시토(36)는 "쓰나미가 덮칠 당시 짤리따 해변에선 많은 이들이 산책하고 식사를 하는 등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면서 "현재까지 파악되기론 최소 40명이 바다로 휩쓸려 갔고, 이중 4명은 오늘 아침 해변에 시신으로 밀려왔다"고 밝혔다.
루시토는 조기경보시스템이 망가져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서 약 2㎞ 떨어진 해상에 쓰나미 감지용 부표가 떠 있었는데 몇 년 전 누가 그걸 훔쳐갔다.

무슨 목적이었는지 모르지만, 그 때문에 피해자들은 아무런 경고도 받지 못한 채 쓰나미에 노출됐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긴급 구호물자를 나눠주고 중장비를 동원해 잔해를 치우는 등 복구 작업을 시작했지만, 피해주민 상당수가 해변가 가건물에 거주하던 저소득층으로 주택 재건 등과 관련한 지원을 받기 힘든 처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긴급현장조사차 피해지역을 찾은 아시아개발은행(ADB) 인도네시아지사 소속 컨설턴트 박상영(48)씨는 "피해주민 다수는 해변에 가까운 무허가 건물에 거주했기에 추후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할 안타까운 상황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ADB는 팔루 지역에 쓰나미 피해 방지를 위한 방조제를 건설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며, 인도네시아 정부는 순다 해협 일대에도 이와 유사한 피해 저감 설비를 갖추는 방안을 검토해 줄 것을 ADB측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이번 참사는 조기경보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 상당한 문제가 됐다"면서 "반면 우리나라는 재해조기경보 시스템이 매우 발달한 만큼 관련 장비를 인도네시아에 지원할 수 있다면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재난당국은 이번 쓰나미로 24일 오전 현재까지 최소 281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쓰나미의 규모는 비교적 작은 편이었지만, 태양, 지구, 달이 일직선상에 있는 대조기(사리)를 맞아 만조 수위가 높아진 상황에서 발생한 탓에 피해가 컸다.

원인으로는 순다 해협에 있는 작은 화산섬인 아낙 크라카타우의 분화에 영향을 받아 해저 산사태가 일어나 쓰나미를 유발했을 것이란 설이 유력하게 거론된다.인도네시아는 '불의 고리'로 불리는 환태평양 조산대에 있어 지진과 화산분화, 쓰나미 등으로 인한 피해가 자주 발생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