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여전히 난감한 질문

이경춘 < 서울회생법원장 leek@scourt.go.kr >
서울회생법원은 미처 독립청사를 마련하지 못하고 출범해 옛 사법연수원 건물을 청사로 사용하고 있다. 작년 3월 서울회생법원의 개원과 함께 이곳에 부임하고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내가 이 건물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85년 3월 사법연수생으로 입소하면서다. 당시 교수실이 있던 자리에 내 사무실이 있었고, 주요 사건의 집회 등이 열리는 1호 법정은 사법연수생들의 합동강의실로 사용되던 곳이다. 1987년 봄 사법연수원을 수료했으니 30년 만에 예비법조인으로서 공부하던 곳에 다시 온 셈이다.

옛 건물에 오니 그 시절 생각도 다시 하게 된다. 당시 부원장님께서 법조인의 길을 택하게 된 동기에 관한 글을 제출하라고 했는데, 2년의 연수 기간 중 가장 난감했던 과제였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전혀 부유한 집안이 아니었음에도 천성이 비교적 낙천적이었던 덕인지 별로 결핍에 대한 생각을 해본 일 없이 자라면서 법관직에 대한 귀동냥을 통해 막연히 꿈을 품었다. 부모님과 조상의 음덕으로 그 길에 들어섰기 때문에 지금도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만족스럽게 답변할 자신이 없다. 아마도 그 과제를 준 것은 법조인의 여러 덕목을 심사숙고해 일생의 소명을 다할 수 있는 도리와 자세를 찾아 견지하라는 뜻이었을 것이다.올해 변호사단체의 국제행사에서 또다시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지난 4월 서울에서 열린 뉴욕지방변호사회의 지역 미팅 중 미국 연방판사 등과 함께 참여한 자리였는데 사회자가 제기한 중요 질문 중 하나가 ‘어떻게 판사가 됐는지’였다. 사법연수생 때 교수님으로부터 받았던 것과 유사한 질문을 30여 년이 지나 선배 법관 입장에서 외국 법조단체로부터 받은 것이다. 법조인으로서의 근본 고민은 비슷한 모양이다. 내가 어떤 법관인지에 관한 질문일 텐데 이번에도 여전히 직접적인 답을 하기 어려웠다. 고민 끝에 법치주의 실천을 위한 법 제도의 합리적 운영에 관해 품어온 생각으로 대신했다.

요지는 이렇다. 긴 대나무 장대를 바로 세워 아래의 굵은 부분을 붙잡고 휘두를 때는 급하게 빨리 휘두르더라도 큰 힘이 들거나 장대가 부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장대의 가는 윗부분을 붙잡고 거꾸로 세워 휘두를 경우 그렇게 할 수 없다. 붙잡은 부분이 가늘고 약해 십중팔구는 휘두르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지기 때문이다. 부러지지 않게 하려면 움직이는 힘이 반대편 굵은 부분까지 전달되기를 기다리면서 적절한 속도로 조심스럽게 휘둘러야 한다. 법 제도에 의한 사회 변화를 추구할 때도 비슷할 것이다. 많은 재판을 해오는 동안 거꾸로 붙잡고 휘두르는 장대를 연상할 때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