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100년 家業' 막는 상속세…기업·일자리 토양 훼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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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企 엑소더스' 부르는 상속세 부담과도한 상속세 부담으로 인한 기업의 경영권 매각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해외 이전을 검토하는 기업도 늘어나는 등 국가 경제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1975년 설립된 손톱깎이 제조업체 쓰리세븐은 2008년 창업주인 김형규 회장이 별세한 뒤, 유족들이 150억원 규모의 상속세를 마련하지 못해 지분 전량을 중외홀딩스에 매각했다. 쓰리세븐은 매각 이전에는 세계 1위 기업이었는데 매각 후 적자기업으로 전락, 과도한 상속세 피해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다행히 최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야당 의원의 질의에 대한 답변으로 가업상속세 완화 가능성을 언급해 그 귀추가 주목된다.
韓, 가업승계 상속세율 65%…경영권 매각·해외 이전 늘어
가업상속공제 연 60여건 불과…독일은 연 1만7천건 넘어
상속세율 인하하고 최대주주 주식 할증과세도 폐지해야
임동원 <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
한국의 현행 상속세율은 10~50%의 5단계 누진세율 구조다. 기업 상속은 최대주주 등의 주식을 할증 평가(30%)하고 있어 최대 65%의 상속세율을 적용받기도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국가와 한국의 상속세 명목 최고세율(50%)을 단순 비교하면 한국은 벨기에(80%), 프랑스(60%), 일본(55%)에 이어 상속세율이 네 번째로 높은 국가다. OECD 35개 국가 중 13개 국가는 상속세가 아예 없다.또 30개 국가는 직계비속이 가업을 승계할 때 상속세 부담을 면제해주거나 세율 인하 및 공제 혜택을 제공한다. 한국보다 명목 상속세 최고세율이 높은 벨기에와 프랑스는 직계비속이 가업을 승계할 때 각각 80%→30%, 60%→45%로 세율을 인하하고 공제 혜택을 적용해 실제 상속세율은 각각 3%, 11.25%에 그친다.
배우자가 가업을 승계할 때는 상속세를 면제(영국, 스위스, 덴마크, 프랑스, 아이슬란드 등)하거나 자녀에 대한 상속세를 면제(룩셈부르크, 슬로베니아, 스위스, 헝가리)하는 경우도 있다. ‘히든챔피언’의 본고장 독일은 직계비속에게 가업을 승계하면 상속세 최고세율을 기존 50%에서 30%로 낮춰주는데, 여기에 가업상속 공제를 적용하면 실제 최고세율은 4.5%에 불과하다. ‘100년 기업’이 자랑인 일본 역시 높은 세율로 인해 가업 승계가 줄어들자 상속세 납부 유예 등 완화정책을 추진하고 있다.세계 최고 징벌적 상속세율그런데 한국은 가업 승계 시 최대주주 주식을 할증 평가해 65%라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상속세율을 적용한다. 이렇게 가업 승계 시 지분의 65%를 세금으로 납부해야 하는 한국에서는 100년 기업이나 히든챔피언 같은 강소기업을 성장시키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명목 최고세율이 50%가 훨씬 넘는 상속세는 징벌적 세금처럼 보인다.
이렇게 과도한 상속세 부담은 가업 승계 시 기업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며 기업의 해외 이전, 사모펀드에 경영권 매각 등 경영 불확실성과 함께 변칙적인 증여를 유인할 가능성을 높인다. 유니더스, 락앤락 등 세계적으로 알려진 한국 기업이 과도한 상속세 부담 탓에 경영권을 사모펀드에 매각했는데, 이들 사모펀드에 경영권을 매각한 기업은 일자리 유지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 자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가업 승계 시 상속세의 과도한 부담 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이에 따라 정부는 ‘가업상속공제제도’를 확대해 원활한 가업 승계를 위한 지원책을 모색해 왔다. 가업상속공제제도는 과거보다 상한(1억원→500억원)과 대상(중소기업→중소·중견기업)을 확대했다. 하지만 가업상속공제제도의 적용 요건이 너무 엄격해 그 실적이 연평균 60건을 조금 넘는 데 그치는 등 저조해 ‘빛 좋은 개살구’로 치부됐다. 상속기업의 존속과 일자리 유지라는 사회적 이익 실현에 가업상속공제제도를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는 독일과 크게 대비된다. 독일에선 연평균 1만7000건이 넘는 가업상속공제가 이뤄지고 있다.설상가상으로 한국은 올 1월부터 가업 영위기간을 늘려 공제한도를 조정(15년 이상 300억원→20년 이상 300억원, 20년 이상 500억원→30년 이상 500억원)하는 등 가업상속공제 요건을 강화해 가업 승계 시 상속세를 공제받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 특히 중견기업은 가업상속인이 가업상속재산 외의 상속재산으로 상속세를 납부할 능력이 있으면 가업상속공제 적용을 배제하는 ‘상속세 납부능력 요건’이 추가됐다. 이처럼 실효성 없는 가업상속공제제도는 ‘부(富)의 대물림’이라는 오해 때문에 그 활성화를 위한 적용 요건 완화 시도가 국회에서 저지됐고, 반대로 적용 요건은 더욱 강화돼 기업인의 심적 부담이 커지고 있다.
독일의 가업상속공제제도는 헌법재판소 판결에 따라 2016년 개정됐음에도 불구하고 한국보다 요건이 엄격하지 않다. 피상속인의 10년 이상 가업 영위나 상속인의 가업 종사·대표자 취임 등은 제도상 요건이 아니다. 피상속인의 지분율도 한국이 50%(상장기업은 30%)인 데 비해 독일은 25%로 엄격하지 않다. 사후관리 기간도 독일은 5년 또는 7년으로 한국의 10년에 비해 짧고, 고용유지 요건은 총 급여 5년간 400% 또는 7년간 700%로 한국의 1000%(중견기업 1200%)보다 기간 및 비율 측면에서 엄격하지 않다.
'富의 대물림' 인식 불식해야결과적으로 국제적으로 가장 높은 상속세율과 무력화된 가업상속공제는 가업 승계의 대표적인 장애물이 됐으며, 이로 인해 가업 승계를 포기하는 극단적인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2018 중소기업 가업승계 실태조사’를 보면 중소기업의 42%가 ‘가업 승계 계획이 없다’고 응답했다. 이는 전년도보다 9.8%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또 가업 승계의 최대 걸림돌로 ‘상속세 등 조세 부담’을 꼽았다.
가업 승계는 단순한 부의 대물림이 아니라 기업의 존속 및 일자리 유지를 통해 국가 경제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수단이다. 저성장 기조에 접어든 현재 경제 상황에서 기업가정신을 고취하고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는 가업 승계에 장애물로 존재하는 상속세 제도, 즉 높은 상속세율과 실효성이 떨어지는 가업상속공제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기업 성장·일자리 선순환 절실
우선 가업 승계 시 국제적으로 가장 높은 상속세율(65%)을 인하해야 한다. 중소·중견기업 활성화 및 대기업으로의 성장이라는 기업 선순환을 위해서다. 또 최대주주에 대한 주식 할증 과세는 경영권 프리미엄이 이미 주식에 포함돼 있어 실질과세 원칙에 위배되므로 폐지하는 것이 타당하다.다음으로 가업상속공제제도의 입법 목적이 기업의 존속 및 일자리 유지를 통해 세금 감면액 이상을 국가 경제 성장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라면 공제 대상 범위를 전체 기업으로 확대하고 적용 요건을 완화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물론 원활한 가업 승계 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인 일자리 유지 및 창출을 실현해야 하는데, 대기업은 다른 적용 대상보다 고용유지 요건을 강화하는 등의 방법으로 일자리 창출이라는 공공복리를 실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