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취지 소멸' 65년 묵은 주휴수당, 유지해야 할 이유 없다

근로자가 받는 최저임금을 계산할 때 ‘가상 근로 시간’인 주휴일(1주 동안 소정 근로일 개근 시 주어지는 유급휴일)을 포함시키는 내용의 시행령을 정부가 밀어붙이기로 함에 따라 산업현장이 큰 혼란에 휩싸였다. “실제 일한 시간을 기준으로 최저임금 준수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조차 무시한 ‘친(親)노조’ 편향 조치라는 여론이 들끓었지만 끝내 외면당하고 말았다. ‘약정 휴일’ 수당을 시급계산에 포함하지 않겠다는 정부 결정 역시 ‘사용자가 지급하는 금품’을 임금으로 정의한 근로기준법과 상충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저임금제 등을 “국민 공감 속에서 추진하겠다”며 개선을 다짐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시점이어서 실망감은 더욱 크다. ‘기본급 인상’ 등에 착수 시 최저임금 시행령 적용을 최대 6개월 유보하며 ‘적응 시간’을 주기로 했다지만, 실효성 없는 ‘면피 행정’일 뿐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노조 합의 없이는 어떤 임금체계 변경도 불가능한 현실에서 정부의 책임 회피성 미봉책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반박한 대로다. “아무 의미가 없어 크게 낙담이 되고 억울한 심경”이라는 말에서 기업들의 억장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 드러난다. 반면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조치”라며 환영한 대목은 시행령의 노조편향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웅변해준다.문 대통령과 정부 일부 인사들이 최근 ‘친시장’ 깜빡이를 켜며 경제현실에 눈 뜨는 모습을 보여주는가 싶더니 ‘노조동맹군 본색’을 드러내는 좌회전을 강행한 것이어서 배신감마저 들게 한다. 더 이상 정부가 달라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가 됐다. 이제는 삼권분립의 취지와 정신을 살려 국회가 입법에 나서야 할 때가 됐다.

무엇보다도 모든 소동과 논란의 근원인 ‘주휴시간’ 규정 폐지가 시급하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미 “근본 해결책은 타당한 입법 취지와 해외 사례를 찾기 어려운 주휴수당을 폐지하는 것”이라고 수차례 촉구해 왔다. 주휴시간과 주휴수당 제도가 도입된 것은 1953년 6·25전쟁 휴전 직후로, 최저생계비도 받지 못하던 근로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도 이런 제도를 유지하겠다는 건 노조에 발목잡힌 정부의 억지요, 시대착오일 뿐이다.

‘유급 주휴일’을 법으로 강제하는 나라는 한국 외에는 대만 터키 정도에 그친다.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 대부분의 선진국은 주휴일이 무급이다. 국제노동기구(ILO)도 주 1회의 휴일 보장을 권고하고 있을 뿐이다. 현대모비스가 신입사원에게 5000만원대의 연봉을 주고도 ‘최저임금 미달’이라며 정부의 시정조치를 받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진 데서 유급 주휴제도의 비현실성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최저임금 근로자 1인당 연평균 320만원에 달하는 주휴수당이 영세한 중소기업들에 특히 큰 비용부담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대법원의 거듭된 판결을 무시한 시행령을 밀어붙이는 것은 포괄임금원칙과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날 뿐 아니라, 삼권분립 원칙을 짓밟는 행태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부처 간 이견 조정을 위해 국무회의 전날 ‘녹실회의’를 열었지만 고용노동부의 고집을 꺾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 내에서 합리적인 정책조율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국회가 나서야 한다. 노사의 의견을 두루 경청하고 제대로 된 공청회 등을 거쳐 국민적 공감대 속에서 최저임금제를 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 현실에 맞지도 않고 타당한 근거도 없는 유급 주휴제도를 없애는 게 그 작업의 첫걸음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