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없던 새로운 시장 만든 LG전자 新가전 5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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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LG전자LG전자가 세탁기와 분리된 건조기를 국내에 처음 출시한 건 2004년 가을 무렵이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실외에 빨래를 널지 않고도 옷을 건조시킬 수 있는 고성능 건조기에 대한 수요가 있다고 봤다. 결과는 냉랭했다. 10년 이상 연구개발(R&D)에 인력과 자원을 투입했지만 전체 국내 건조기 시장은 연 10만 대도 넘지 못했다. 2016년 11월 LG전자의 새로운 건조기 제품이 출시된 뒤 시장이 180도 달라졌다. 지난해 건조기 판매량이 60만 대를 돌파하더니 올해는 150만 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전체 드럼세탁기 시장과 맞먹는 규모다.
건조기·의류관리기·무선청소기·공기청정기·피부관리기
창조적 혁신기술에 소비자 반응 폭발
판매량 갈수록 급증 … 새 수익원 부상
‘퍼스트 무버’ 시장 독식LG전자가 신(新)가전제품으로 과거에 없던 새로운 시장을 열고 있다. 소비자들이 가려워하는 지점을 정확히 간파한 뒤 혁신 기술을 동원해 신제품을 만들어내자 소비자들이 화답하고 있다. 건조기뿐만이 아니다. 의류관리기, 무선청소기, 공기청정기, 피부관리기 등 LG전자가 최근 수년간 내놓은 ‘신가전 5인방’이 LG전자의 새로운 ‘수익원’으로 부상하고 있다. 과거 국내 가전 시장을 삼성과 LG가 양분하던 공식도 바꿔놨다. 시장을 선점한 ‘퍼스트 무버’가 수익을 독식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LG전자가 2016년 내놓은 건조기는 냉매를 압축하고 순환시키면서 발생하는 열 에너지를 활용해 옷을 건조시키는 혁신적인 ‘저온제습’ 기술을 채택했다. LG전자 관계자는 “에어컨이 컴프레서로 냉매를 압축하는 과정에서 실내 온도를 낮추는 것과 같은 원리를 건조기에 응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100도에 가까운 열풍으로 옷감을 건조시키던 기존 방식에 비해 전기료가 줄어들고 옷감이 손상되는 부작용을 크게 줄였다. 모터와 컴프레서의 작동 속도를 순간순간 원활하게 조절해 제품의 성능과 효율을 끌어올리는 LG전자의 ‘인버터 기술’이 빛을 발했다. LG전자의 건조기가 돌풍을 일으키자 삼성전자 등 경쟁사들도 ‘저온 제습’ 방식의 건조기를 국내에 앞다퉈 내놨다. 올해 LG전자의 국내 건조기 시장 점유율은 60%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의류관리기기도 LG전자가 새로 만들어낸 신가전 제품으로 꼽힌다. 2011년 LG전자가 ‘스타일러’를 출시했을 당시만 해도 “200만원짜리 사치품을 사는 주부가 몇 명이나 있겠냐”는 반응이 나왔다. 판매량은 1만 대를 밑돌았다. 2015년 제품 크기를 줄이고 성능을 개선한 2세대 스타일러를 출시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직장 여성들 사이에 “세탁소 갈 일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판매량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 세탁소에 맡기지 않고 옷을 관리하길 원하는 소비자 수요를 정확히 읽었다. 기술력이 수요를 뒷받침했다. ‘무빙, 스팀, 건조, 주름 관리’ 등 4가지 차별화된 핵심 기능에 소비자들이 서서히 반응하기 시작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국내 의류관리기 시장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15만 대를 돌파했고 올해는 30만 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경쟁사도 유사 제품을 내놨다. 코웨이는 지난 5월, 삼성전자는 8월 출시했다. 하지만 국내 시장의 90%는 LG전자가 독식하고 있다.소비자가 간절히 원하던 제품 개발
LG전자가 지난해 9월 말 출시한 피부관리기기 ‘LG 프라엘’도 소비자들이 내심 바랐던 수요를 ‘콕’ 집어낸 제품이다. 손상된 피부를 제대로 관리받고는 싶지만 신뢰할 수 있는 의사나 제품이 많지 않다는 게 소비자들의 불만이었다. LG전자가 출시한 제품은 더마 LED 마스크, 토탈 리프트업 케어, 갈바닉 이온 부스터, 듀얼 모션 클렌저 등 4종이다. LED(발광다이오드), 미세전류, 고주파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해 피부 관리를 도와주는 제품이다. 대기업이 만들어 안전과 효능을 신뢰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판매가 늘고 있다.LG전자 관계자는 “외부 전문기관에 의뢰해 일반인 100명을 대상으로 인체 적용 테스트를 한 결과 테스트 항목 중 98%에서 실질적인 피부 개선 효과가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피부 이상 반응 등 부작용은 전혀 없었다.
LG전자의 무선청소기 ‘코드제로 A9’은 혁신 기술로 퍼스트무버를 빠르게 따라잡은 사례다. LG전자가 지난해 6월 A9을 출시하기 전 세계 프리미엄 무선청소기 시장은 영국 가전업체 다이슨의 ‘독무대’였다. A9이 출시된 이후엔 LG와 다이슨이 국내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비결은 차별화된 부품 기술력이다. 진공청소기의 빨아들이는 힘을 결정하는 모터 성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코드제로 A9에는 비행기 제트엔진보다 16배 더 빨리 회전하는 스마트 인버터모터 P9이 장착됐다.LG전자가 지난 10월 선보인 공기청정기 ‘LG 퓨리케어 360도 공기청정기’ 신제품도 청정 면적을 키운 혁신 기술로 인기를 얻고 있다. 학교, 유치원, 병원 등 청정 면적이 넓은 공공장소에 특화된 공기청정기 수요에 부응하는 제품이다. 국내 공기청정기 시장도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2016년 100만대 수준이던 시장이 지난해 140만 대를 돌파했고 올해는 250만 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