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대 꽂은 채 퍼팅해도 OK…"그럼 공 세게 치는 게 낫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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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부터 달라지는 주요 골프 규칙 (하)2012년 US오픈 챔피언 웹 심슨(33·미국)은 한때 ‘불운의 사나이’란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바람 때문에 겪은 세 번의 악연 탓이다. 그는 2009년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밥호프클래식 최종일 11번홀과 2011년 5월 취리히클래식 최종 4라운드 15번홀, US오픈 3라운드 13번홀에서 바람이 공을 움직이는 바람에 벌타를 받아 우승컵을 날렸다. 취리히클래식에선 1벌타 때문에 연장전에 끌려들어가 패했다. 통한의 역전패였다.불합리 쏙…한결 편안해진 그린 플레이‘악법도 법’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억울한 희생자들은 심슨 외에도 차고 넘쳤다. 내년부터 이런 ‘참사’는 더 이상 벌어지지 않는다. 골프 규칙을 관장하는 영국왕립골프협회(R&A)와 미국골프협회(USGA)가 그린 위의 ‘불합리’ 규칙을 과감하게 걷어냈다. 골프룰이 만들어졌던 초기, 거친 그린 위의 공이 움직인다는 것은 플레이어가 의도적으로 발을 구르거나 옷을 펄럭인 인위적 결과로 간주하고 벌타 등의 불이익을 줬다. 하지만 지금은 산들바람에도 공이 움직일 수 있는 ‘유리알 그린’이 흔하다. 협회가 이런 코스 환경조건의 변화에 주목한 것이다.
"공을 깃대에 맞힌다고해서 들어갈 확률 높아지지 않아"
바람 불어 공이 굴러가거나 실수로 공 건드려도 무벌타
스파이크 자국·박힌 돌 등 그린 손상도 모두 수리 가능
"양심없는 선수 악용할 수도"…너무 관대한 룰 '논란의 불씨'
앞으로 바람이 불어 공이 굴러가든, 중력에 의해 공이 굴러가든, 골퍼가 의도하지 않은 ‘사고’에 대해서는 벌타를 매기지 않는다. 마크를 한 이후에 굴렀다면 원위치하면 되고, 마크를 하기 전에 굴러갔다면 멈춘 그 자리에서 퍼팅하면 된다. PGA 투어 프로인 윌리엄 맥거트는 “그린 빠르기가 지금의 2분의 1도 안되던 옛날 그린을 기준으로 삼던 불합리가 사라졌다”고 반겼다.같은 맥락에서 퍼터를 떨어뜨려 공을 건드리거나, 캐디가 실수로 걸어가다 발로 공을 건드리는 등의 사고에도 벌타를 주지 않는다. 연습스트로크를 하다 퍼터로 공을 건드려 움직인다 해도 원위치한 뒤 퍼팅하면 괜찮다. 그대로 퍼팅할 경우 예전 같으면 1벌타에 오소(誤所)플레이 2벌타 등 3벌타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그린 위 골프가 ‘1744년 골프 규칙이 처음 정립된 이래 가장 혁명적인 변화’를 누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깃대 꽂은 채 세게 치면 잘 들어갈까?
깃대를 꽂은 채 그린 위에서 퍼팅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큰 변화다. 내년부터는 깃대를 꽂고 퍼팅을 하든, 깃대를 빼고 퍼팅을 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깃대를 맞힌다 해도 홀컵에 공이 들어갈 확률이 높아지는 등의 특별한 이익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을 적극 반영한 결과다. 깃대와 홀컵 사이에 공이 끼인 경우 홀인으로 간주한다. 공의 일부라도 홀컵으로 진입했다면 홀인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깃대를 꽂고 하는 퍼팅이 유리한지는 판단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김태연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경기위원장은 “상황에 따라 공이 튀어나올 수도,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어 유불리를 일반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게 규칙 개정의 배경”이라고 해석했다. 이와 관련, ‘필드의 과학자’로 불리는 브라이슨 디섐보(미국)는 “탄소섬유로 된 깃대라면 반발계수가 낮기 때문에 꽂고 하겠지만, 철소재로 된 깃대라면 뽑는 게 유리하다고 본다”고 말해 선택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공마크(피칭마크) 외에는 수리가 금지됐던 그린 손상도 앞으로는 모두 수리할 수 있게 됐다. 스파이크 자국이나 장비, 깃대에 긁히거나 찍힌 자국, 동물의 발자국, 지면에 박힌 물체(돌멩이, 도토리, 티 등)도 수리할 수 있다.
하지만 퍼팅 그린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일상적인 작업, 즉 에어레이션 구멍이나 잔디깎이가 낸 홈은 수리가 금지된다. 아울러 자연적인 현상으로 잔디가 괴사했거나 병들어 울퉁불퉁해진 그린표면도 수리할 수 없다.
이전엔 가혹하게 벌타를 매겼던 ‘퍼팅라인 접촉’에도 벌타가 없어진다. 물론 라이 개선이나 그린 테스트 등의 의도가 없을 경우다.이런 규칙 완화가 향후 논란의 불씨를 남길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진하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경기위원장은 “골퍼들이 어떤 손상 부분을 수리하는지 일일이 근거리에서 확인하기 어려운 만큼 선수들이 악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