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형 웹툰 시대' 연 와이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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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심준경 와이랩 대표신암행어사, 테러맨, 신석기녀, 부활남, 심연의 하늘, 캉타우, 아일랜드, 세상은 돈과 권력, 삼국지톡...이 웹툰들은 네이버웹툰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인기작이라는 점 외에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웹툰 배경에 박혀있는 '기획, 제작 와이랩'이란 로고다.21일 서울 합정동 와이랩스튜디오에서 만난 심준경 와이랩 대표는 “한국 최대 규모 웹툰 제작사”라고 소개했다. 약 40여 명의 웹툰 작가가 와이랩의 이름으로 작품을 선보인다. 웹툰 기획과 제작은 창업자이자 대표 프로듀서인 윤인완 작가가 총괄한다. 심 대표는 작품에 대해선 관여하지 않는다. 그는 “제가 작품을 만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인데 어떻게 가타부타 하겠냐”며 “작품은 작가의 몫”이라고 말했다.심 대표는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스틱인베스트먼트, 이스트브릿지파트너스, 프리미어파트너스에서 근무한 벤처캐피탈리스트 출신으로 2016년에 와이랩에 합류했다. 그는 “웹툰 산업은 성장 가능성이 큰 한국의 성장 동력”이라며 “무엇보다 한국이 주도하는 몇 안 되는 산업”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웹툰 제작사 대표를 맡게 된 이유기도 하다.
벤처캐피탈리스트가 웹툰 제작사 대표로 변신
여러 작가가 똑같은 세계관으로 공유하는 등 새로운 시도 잇따라
와이랩 이름으로 나오는 수많은 웹툰 작품들은 수백만 조회수를 자랑한다. 작가에 대한 지원이 남다른 덕분이다. 지난해엔 독립 레이블(독자적으로 활동하는 소그룹)도 허용했다. 엔터테인먼트사의 레이블처럼 작가가 직접 작품 기획과 제작에 뛰어들 수 있도록 했다는 설명이다. ‘실질객관동화’ ‘조선왕조실톡’으로 인기를 끈 웹툰 작가 무적핑크를 주축으로 한 '핑크잼'이 독립 레이블의 대표적인 사례다.
심 대표는 와이랩의 킬러 콘텐츠인 ‘슈퍼스트링’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2015년 12월에 발표된 슈퍼스트링은 태양계에 원인불명의 이상이 생겨 멸망 직전의 지구에서 인류를 구출하는 이야기다. 서로 다른 작품들의 주인공들이 이 세계관 안에서 함께 움직여 웹툰계의 ‘마블 유니버스’로 불리기도 한다. 작가와 주인공이 다르더라도 똑같은 세계관을 공유한다는 의미다. “한국에서도 ‘콘텐츠 유니버스’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테러맨 주인공이 수능을 보러가다 사건과 맞닥뜨리거나, 신암행어사에서 조선시대의 김문수, 황진이, 장영실 등이 재해석되는 것과 같이 매우 한국적인 세계관입니다. 실력 좋은 작가들이 포진해있고 이를 이끌 수 있는 리더십과 시스템이 갖춰진 와이랩에서만 가능한 프로젝트에요.”
와이랩은 슈퍼스트링 IP를 활용해 사업 다각화에 나서고 있다. 지난 13일 라인게임즈는 슈퍼스트링 IP(지적재산권)을 활용한 모바일 RPG 게임 ‘슈퍼스트링’을 소개했다. 또한 ‘부활남’, ‘아일랜드’ 등 영상화를 위한 준비도 진행 중이다. IP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와이랩은 가능성을 인정받아 지난 7월 85억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누적 누자액은 128억원이다.
그는 “콘텐츠 산업의 미래는 IP에 있다고 본다”며 “웹툰 연재가 끝났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IP화돼서 계속 살아 숨쉬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창작자들의 수익원이기에 좋은 작품을 지속해서 생산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덧붙였다.와이랩은 해외 진출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네이버웹툰 플랫폼을 통해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중국, 일본, 북미권에서 와이랩의 작품들을 연재하고 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플랫폼과도 협력했다. 중국 웹툰 플랫폼 ‘콰이콴’에도 작품이 올라갔다. 2017년에는 일본 법인을 세워 현지에서 자체 콘텐츠를 생산하는 중이다. 해외 작가를 국내에 소개시키는 역할도 도맡고 있다. 와이랩의 실력을 믿고 일본의 탑급 출판만화 작가인 히가시무라 아키코가 네이버웹툰에서 ‘위장불륜’이라는 작품을 연재하고 있다. 아키코의 웹툰 연재는 처음이다.
해외 진출에, IP 사업도 순항하고 있는 와이랩이지만 걱정은 있다. ‘밤토끼’로 대표되는 웹툰 불법복제 유통 사이트들이다. ‘밤토끼’ 운영진이 검거되면서 불법 웹툰이 근절될 수도 있겠다고 기대했지만 기쁨은 잠시뿐이었다. 유사 사이트가 우후죽순 생겨나 와이랩을 포함한 웹툰제작사들은 여전히 골치를 앓는다.
심 대표는 정부·소비자·생산자의 삼박자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정부가 나서 열심히 불법 업체들을 잡아주는 게 가장 중요해요. 그런데 정부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에요. 소비자도 불법 유통 사이트에 가서 보는 게 나쁘다는 인식이 있어야 하고, 또 생산자는 결제해서 볼 만한 질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김남영 기자 n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