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부원장보 물갈이 1년 만에…윤석헌, 전원 사표 요구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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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인사 진통 금감원에 무슨 일이…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채 가시지 않은 지난 26일 오후 4시. 9명의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는 유광열 수석부원장으로부터 회의실로 모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부원장보들은 내년도 감독 방향과 경영계획 등에 대한 지시사항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유 수석부원장의 입에선 전혀 다른 말이 나왔다. 유 수석부원장은 부원장보 9명 전원에게 사표 제출을 요구했다. 윤석헌 금감원장의 뜻이라는 것 외에 별다른 설명은 없었다. 충격에 휩싸인 부원장보들 중 일부는 28일까지도 사표 제출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부원장보 "임기 2년이나 남았는데 나가라니…"
윤 원장 "3년마다 임원 전원 교체…조직 안정 해쳐
일부만 사표 처리해 '교차 임기제' 정착시키겠다"
"임원 진용 새로 짜 윤석헌표 금감원 만들겠단 뜻"
부원장 3명도 '암묵적' 사표제출 압박 받아
충격받은 금감원 부원장보들윤 원장이 사표를 요구한 대상은 민병진(기획·경영), 최성일(전략감독), 오승원(은행), 윤창의(중소서민), 김도인(금융투자), 조효제(공시조사), 설인배(보험), 정성웅(금융소비자 보호), 박권추(회계) 부원장보다. 최흥식 전 금감원장은 지난해 11월 채용비리 등으로 얼룩진 금감원 조직쇄신 차원에서 부원장보 9명을 이들로 전원 교체했다. 부원장보들은 임기 만료까지 아직 2년이 남았다. 한 부원장보는 “우리도 조직쇄신 차원에서 임명된 사람들이고, 엄격한 평가 기준을 적용받았다”며 “임기를 시작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나가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처사”라고 말했다. 금감원의 다른 관계자는 “낙하산 인사에 대한 비판 여론 때문에 금융권 재취업까지 안 되고 있어 부원장보들이 충격을 받았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원장이 부원장보들에게만 사표 제출을 요구했지만 유 수석부원장을 제외한 권인원(은행·중소서민), 원승연(자본시장·회계), 이상제(보험·금융소비자보호) 부원장 3명도 비슷한 압박을 암묵적으로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원 부원장은 지난해 11월, 권 부원장과 이 부원장은 지난해 12월 임기를 시작했다. 이들의 임기도 3년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부원장의 인사권은 금융위원회에 있지만 아래 직급인 부원장보들이 사표를 제출하는 마당에 부원장들이 버티고 있을 명분이 없다”고 말했다.이번 인사는 윤 원장이 지난 5월 취임한 이후 처음 시도하는 인사다. 윤 원장은 전임 금감원장 2명이 연이어 물러나면서 조직 안정을 위해 그간 임원 인사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윤 원장이 자신의 철학을 잘 실천해줄 임원을 중용하겠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밝힌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윤석헌 “일부만 사표 받을 것”윤 원장은 2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번에 사표 제출을 요구한 것은 금감원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9명의 부원장보는 지난해 11월 성과와 리더십에 대한 평가보다는 조직쇄신 차원에서 교체된 이들”이라며 “이제 성과와 리더십을 기반으로 다시 임원들을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민간 금융회사들도 경영 안정 차원에서 임원들의 임기 만료일이 한꺼번에 도래하지 않도록 교차임기제를 채택하고 있는 만큼 금감원도 임원 임기를 각기 다르게 가져가야 한다는 게 윤 원장의 생각이다.
그는 “어떤 임원에겐 사표 제출을 요구하고 누구에겐 계속 있어달라 말하기보다는 우선 전원 사표 제출을 받고 그다음에 결정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부원장들의 거취에 대해선 “그건 알아서 해석해달라”는 말로 즉답을 피했다.
금융계에선 금감원 임원 인사가 마무리되면 윤 원장이 금융감독과 시장에 대한 혁신 드라이브를 더 강하게 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윤 원장은 “이미 금융회사 시스템(지배구조) 문제와 소비자 보호, 시장규율의 혁신 필요성을 계속해서 얘기했고, 내년에도 그 연장선상에서 업무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윤 원장은 최근 금감원 예산 문제를 두고 금융위와 빚은 갈등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는 금융위가 예산으로 감독권의 독립성을 손상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 “그건 맞다”고 했다. 윤 원장은 “다만 금융위가 예산 문제로 금감원 업무에 무조건 간섭한다고는 볼 수 없으며 금융위가 의도적으로 그런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