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추진 '협동조합 유치원', 현실의 벽앞에 무너진 꿈

화성 학부모들 의욕적 추진…임대건물 못찾아 결국 무산
비리 척결 앞장선 학부모들 "결국 우리 자녀만 피해"

사립유치원 비리를 척결하고 나아가 학부모들이 직접 유치원을 운영해보겠다고 두 팔 걷어붙였던 장성훈 동탄비리유치원사태비상대책위원회(이하 동탄 비대위) 대표의 목소리는 불과 한 달여 만에 180도 달라져 있었다.학부모가 운영하는 '협동조합 유치원' 제안서를 만들던 장 대표의 차분하지만, 무게감 있던 목소리에서 그가 짧은 시간 얼마나 많은 연구를 해왔는지 전해졌었다.

그러나 한 달여 만인 28일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그의 목소리에선 '회복 불가능한' 실망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장 대표는 지난 10월 사립유치원 감사 결과가 실명과 함께 공개되면서, 내년에 5살이 될 자녀를 보내기로 마음먹었던 유치원들의 행태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한 유치원은 아이들이 먹을 급식 식자재를 무허가 시설에서 납품받아온 사실이 적발됐다고 했다.

정부는 곧바로 비리 유치원의 문제를 잡겠다며 여러 대책을 내놓았지만, 장 대표는 당장 학부모들이 안심할 만한 대안은 없었다고 했다.

고민 끝에 학부모도 협동조합 형태로 유치원을 운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찾아낸 그는 열 일 제쳐두고 관련 법률을 찾아 공부하고 제안서를 뚝딱 만들어 냈다.비슷한 고민을 하던 학부모 10여명도 선뜻 동참 의사를 밝혀왔다.

무엇보다 화성시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겠다는 뜻을 전해와 협동조합 계획은 막힘없이 추진되는 듯했다.

학부모 1인당 500만원씩 출자금을 내 건물 인테리어 비용과 교재, 교구비를 충당하기로 했다.협동조합 추진에서 가장 중요한 유치원 건물 선정은 시가 후보 시설 3곳을 제안해줘 큰 짐을 덜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난 24일 시로부터 '후보 시설을 검토해봤는데 유치원 시설기준에 적합한 건물이 아니었다'는 답변을 받으면서 협동조합 유치원 추진은 '올스톱' 됐다.

지난 10월 법률이 개정되면서 공공기관 건물을 협동조합에 임대할 수 있게 됐지만, 소방 관련 법상 노유자시설(아동 관련 시설)인 유치원 시설기준을 만족하는 곳이 없었던 것이다.
사용할 건물 없이는 협동조합 신청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장 대표는 결국 호기롭게 출범한 협동조합 이사회를 25일 해체하고, 그동안 함께 준비해 온 학부모들과는 '각자도생'하자고 결론지었다.

뒤늦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경기도교육청이 대책을 마련해보겠다며 일주일만 기다려달라고 했지만, 장 대표는 큰 기대는 없다고 했다.

장 대표는 "지난 두 달간 정말 공부 많이 했다.

이사회도 꾸리고 세부 운영계획까지 나왔다.

근데 법이 있으면 뭐하냐. 정작 사용할 건물조차 없지 않냐. 정부는 협동조합 유치원 만들 수 있다고만 했지 '그 다음은 너희가 알아서 해라'는 것과 다를 게 뭐냐"고 성토했다.

그는 "이사회를 해체하면서 정말 화가 많이 났다.

이럴 거면 학부모도 협동조합으로 유치원을 운영할 수 있다는 발표라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무엇보다 전면에 나서 싸운 부모 '덕'에 자녀가 피해를 볼지도 모르는 상황이 더 기가 찰 노릇이다.

장 대표는 "내 얼굴이 다 공개됐는데 어느 사립유치원이 우리 아이를 받아주겠냐"며 "앞으로 이런 일이 있다면 절대 앞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앞에 나서 외친 결과 돌아온 건 피해뿐"이라고 하소연했다.

일부 동탄 비대위 위원은 자녀가 다니는 사립유치원 원장으로부터 "계속 다닐 거냐. 당신 자녀 얼굴 안다"는 식의 '협박 아닌 협박'을 받는다고도 했다.

교육 당국은 이와 관련한 일로 피해당하는 학부모, 원아가 없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협동조합 유치원 추진이 어려움에 부닥쳤다는 소식을 듣고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며 "교육청 차원의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