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1번지 고깃집 '한산'…뷔페·홈파티장은 '북적'
입력
수정
지면A2
2018년 송년회…'폭탄주' 보다 '맛난 음식 가볍게'도심에서 고깃집, 횟집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에게 송년회 등 회식이 많은 연말연시는 통상 ‘대목’이다. 폐업을 결심해도 이 시기엔 장사를 하고 1월 말~2월 초쯤에야 문을 닫는 곳이 많다. 서울 세종대로 세종문화회관 맞은편에 2004년 문을 연 소고기전문점 ‘한우A++’는 지난 20일 문을 닫았다. 김창대 한우A++ 사장(59)은 “송년회를 없애거나 짧게 끝내는 회사가 많아지면서 연말에 장사가 더 잘되는 것도 없다”며 “50대인 내 친구들도 회식을 싫어하는데 젊은 사람들은 오죽하겠나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연말 대목 사라진 대형 음식점
광화문 15년 된 한우전문점 폐업
맛집골목 권리금도 낮아져
늦게까지 술 마시는 사람 감소
저녁 7~8시 택시 탑승률↑…밤 10~11시대는 낮아져
가족·친지들과 함께
맥주 1~2잔 마실 수 있는 독특한 분위기 소형 가게 인기
지인끼리 '홈파티 문화'도 확산
옥션 외식 쿠폰 판매량 35배↑
숙취 해소제는 32%나 감소
지난 7월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등으로 회식을 없애거나 간단하게 하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급기야 송년회까지 ‘실종’되면서 자영업자들 사이에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직장인들 회식의 장이었던 도심의 일반 음식점이나 술집 등은 불황에 허덕이고, 가까운 지인이나 친구들과 함께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이색적인 카페형 음식점이나 술집 등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대형 음식점 송년회 특수 옛말
지난 28일 금요일 서울 광화문 식당가는 저녁시간인데도 한산한 모습이었다. 정부서울청사 인근에서 족발집을 운영하는 이모씨(57)는 “2~3년 전 연말에 하루 10팀이 왔다고 하면 요즘엔 7팀 정도밖에 안 온다”며 “‘연말 특수’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온 손님들도 자리를 일찍 파하거나 술을 적게 시켜 ‘남는 게 없는’ 일도 허다하다. 그는 “예전엔 오후 6시에 단체손님이 오면 10~11시까지 술을 마시다가 2차를 갔는데 요즘엔 9시 넘어서까지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고기 2인분을 먹으면 예전엔 소주 2~3병은 마셨는데 요즘엔 1병 마시는 일도 드물다”고 전했다.이런 회식문화의 변화는 지난 7월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 등을 중심으로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더욱 가속화됐다. 카카오모빌리티에 따르면 9월부터 11월까지 종로1~4가에서 택시 호출시간대 비중을 분석한 결과 오후 7시와 8시에 택시를 탄 비율은 작년 1.7%에서 올해 1.8%로, 작년 1.7%에서 올해 2.0%로 각각 늘어났다. 반면 오후 10시(10.1%→9.2%), 오후 11시(16.3%→14.3%), 밤 12시(22.3%→19.2%)에 택시를 탄 비율은 줄었다. 정시 퇴근을 하거나 간단하게 저녁만 먹고 귀가한 사람은 늘어난 반면 늦게까지 야근을 하거나 회식을 한 사람은 줄었다는 얘기다.
음식점들이 장사가 안되자 세종문화회관, 서울지방경찰청 일대 먹자골목은 상가 권리금도 낮아졌다. 종로구 내수동 행운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음식점이 많은 새문안로 일대 상가들은 권리금이 올 하반기 들어 평균 20% 이상씩 떨어졌다”며 “권리금이 1억~2억원이던 곳은 3000만~4000만원이 내렸다”고 했다. 종로구청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지난 26일까지) 폐업한 일반 음식점은 131개로 전년 동기 대비 9개 늘었다.회사 송년회보다 사적 모임송년회 대목은 술은 덜 마시고, 가족 친지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식점들로 옮겨가고 있다. 온라인유통업체 옥션에 따르면 지난 17일부터 1주일간 뷔페, 레스토랑 등 외식쿠폰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11배나 늘었다. 뷔페 쿠폰 판매량은 337% 증가했고, 패밀리레스토랑 쿠폰 판매량은 3536% 급증했다. 송년회를 고깃집 대신 뷔페나 레스토랑에서 하는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음료나 알약 형태의 숙취해소제는 15%, 젤리 형태의 숙취해소제는 32% 판매량이 줄었다.
28일 종로3가역 4번출구 인근의 익선동과 중구 을지로 등에 몰려 있는 퓨전음식점과 외국식 주점 등도 퇴근 후 모인 20, 30대 직장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 일대에는 맥주 한두 잔을 가볍게 마실 수 있는 가게가 즐비하다. 2~3명이 들어가기에 알맞은 규모를 갖추고 사진 찍기 좋게 내부 인테리어를 꾸며놓아 회사 송년회보다는 사적인 모임을 하기에 더 적합하다.
송년회를 하기 위해 숙박시설을 빌리거나 집에서 ‘홈파티’를 하는 문화도 확산하고 있다. 각자 먹거리와 와인 등을 가져와 나눠 먹는 문화다. 30일 인스타그램으로 ‘홈파티’를 검색해 보니 관련 게시물이 46만여 개나 나왔다. 서울 용산구의 한 파티룸업체는 “이미 11월 초에 크리스마스와 1월1일 전후 예약이 끝났다”고 말했다.
조아란/정의진 기자 arc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