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관련자 10명 수사의뢰·68명 징계 주의

문체부 책임규명 이행계획 확정…수사의뢰 3명·중징계 1명 추가
예술인들 진정성·준비 부족 질타…민간위원 "숙고에 숙고 거듭"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과 단체를 사찰·검열하고 지원에서 배제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자 78명에 대한 책임규명 조치가 확정됐다.정부가 앞서 발표한 블랙리스트 책임규명 이행계획이 미흡하다는 예술계 의견을 수용한 데다, 검토 중이던 공공기관의 징계 처분이 확정됨에 따라 처분 대상자가 늘어났다.

문화체육관광부는 31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책임규명 이행계획 종합보고회'를 열어 블랙리스트를 작성·집행하는 데 관여한 공무원과 산하기관 임직원 10명을 검찰에 수사의뢰하고, 68명을 징계 또는 주의 조치하는 것을 골자로 한 책임규명 최종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가 지난 6월 블랙리스트에 관여한 공무원과 산하기관 임직원 131명(수사의뢰 26명·징계 105명)에 대한 책임규명을 요구하며 제출한 권고안에 대한 정부의 최종 답변이다.여기에는 문체부 외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등 산하기관과 외교부, 국가정보원, 지방자치단체의 조치도 포함됐다.
문체부는 자체 검토대상인 68명(수사의뢰 24명·징계 44명)에 대한 조치를 수사의뢰 10명, 중징계 1명(감사원 징계 3명 미포함), 조의조치 33명(감사원 주의 4명 포함)으로 확정했다.

이는 문체부가 지난 9월 발표했던 이행계획(수사의뢰 7명·주의 12명)에서 수사의뢰 3명, 징계 1명, 주의 17명(사무관급 이상)이 추가된 것으로, 문체부의 당초 이행계획이 '징계 0명'이라고 예술계의 비판을 반영한 것이다.추가 수사 의뢰자 3명은 검찰에서 불기소할 경우 중징계를 요구하기로 했다.

문체부는 지난 11월 예술계와 함께 법률전문가가 참여하는 '블랙리스트 책임규명 이행계획 검토회의'를 구성해 당초 이행계획을 재검토해왔다.

문체부는 검토회의 결과 예술계에서 추가로 3명을 수사의뢰하고 징계 가능한 9명 중 6명에 대한 중징계를 권고했는데, 이 중 3명을 수사의뢰하고 1명에 대해 중징계하고 나머지 5명은 비위 행위 관여도가 상대적으로 낮고 상급자 지시를 거부하기 어려웠던 상황을 감안해 주의조치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민간위원으로 활동하고 검토회의에 참여한 이양구 극작가는 보고회에서 "블랙리스트 실행은 2015년 대부분 끝났고 시효가 경과돼 사실상 징계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면서 "책임규명은 처벌만을 목적으로 한 게 아니라 쌓인 역사적 모순이 많은 한국사회에서 과거 청산의 한가지 모델, 청사진을 만들고 싶었다.

중징계 1명, 수사의뢰 3명은 별거 아닌 듯하지만, 그 한발을 오기까지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숙고해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등 공공기관·지자체 징계권고(61명)에 대해서는 기관별로 자체 조사해 징계 21명(해임 1명·정직 5명·감봉 8명·견책 7명), 경고 및 주의 처분 13명으로 확정했다.
도종환 문체부 장관은 책임규명 이행계획을 직접 설명하면서 "전 정부에서 일어났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실행과 관련해 국민 여러분과 피해를 입은 문화예술인, 문체부로부터 부당한 지시를 받았던 문화예술기관 관계자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지난 5월 대국민 사과에 이어 또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보고회를 참관한 예술인들은 질의응답 도중 보고회 일정이 사전에 충분히 공지되지 않는 등 행사 준비가 부족한 점과 문체부 공무원들의 사과에 여전히 진정성이 결여돼 있다는 질타를 쏟아내기도 했다.

이양구 극작가는 "행사를 준비하는 데 시간이 너무 급했고 논의 과정이 길어졌다.

정말 숙고에 숙고에 숙고를 거듭하는 시간들이 있었는데 문체부와 문화예술계가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이었다"며 "그런 숙고의 과정, 신뢰회복의 과정에 걸맞은 행사 준비를 할 시간은 없었지만 그걸 했어야 한다.

그 부분에서 문체부 공무원들은 아직은 진정한 사과로 오는 길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문체부는 지난해 9월 블랙리스트와 국정농단에 대한 책임을 통감해 실장 직위 3개를 폐지하는 조직개편을 단행했고, 실장급(1급) 3명을 국장급(2급)으로 강등시키고 블랙리스트 관련자 전원을 유관 업무에서 배제하는 인사를 단행한 바 있다.

또한 문체부 전직 장관 2명과 차관 1명이 청와대 관련자들과 함께 블랙리스트 실행과 관련해 형사처벌됐다.

작년 7월 말 출범한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는 지난 6월 말까지 11개월 동안의 진상조사 활동을 통해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만든 블랙리스트로 인한 9천 명에 달하는 문화예술인과 340여 개 단체의 피해 사실을 밝혀냈다.

이를 토대로 블랙리스트 재발을 막기 위한 제도개선 방안과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의뢰와 징계를 권고했다.
문체부는 진상조사위의 제도개선 권고안을 31개 대표과제와 85개 세부과제로 정리해 제도개선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 중 30개 과제들을 이행 완료했다고 밝혔다.

특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 재발을 방지하기 위하여 지원배제 명단을 작성하거나 작성을 지시해 이용하는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형 등을 규정하는 '예술인 권리보장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문체부는 11개월 동안 블랙리스트 진상조사를 통해 밝혀진 사실들을 10권 분량의 백서로 제작해 내년 초 발간할 계획이다.

아울러 블랙리스트 사태로 고통받았던 예술인과 문체부로부터 부당한 지시를 받은 산하기관 직원들에게 장관을 비롯한 문체부 공무원들이 직접 사과하는 자리도 마련할 예정이다.도종환 장관은 "문체부 공무원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우리가 있어서 예술인이 있다고 생각해선 절대 안되며 반대로 예술인이 있어 우리가 있다는 생각으로 일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청와대, 장·차관 지시를 저항하지 않고 이행하는 전달자 역할을 하는 것에 그친 공무원들의 역할을 자성하고 근본적으로 성찰하며 불공정하고 정의롭지 않은 행정을 한 것을 참담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