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12가지 남용'에 대하여

신동우 < 나노 회장 dwshin@nanoin.com >
지난해에는 평창동계올림픽이 훌륭히 치러졌고, 11년 만에 남북한 정상회담이 열렸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됐다. 이런 국가 중대사를 잘 연결해 한반도에 평화의 꿈을 심었다. 방탄소년단이 우리말로 노래해 빌보드 차트 1위를 하고, 유엔에서 세계인 모두가 공감하는 메시지를 자신감 있게 전달했다. 이제 대한민국이 산업화와 민주화의 기적을 넘어 세계 문화 강국이 될 수 있다는 꿈을 심었다.

그러나 다양한 갈등 역시 해를 넘어 이어지고, 그 가운데 젠더 간 갈등은 점차 그 수위가 강해지고 있다. 사회 계층 간 갈등은 어느 시기에나 있어왔지만 우리의 상황은 시간이 갈수록 그 수위가 자정 능력을 훨씬 넘어 위기감을 들게 한다.지난가을 스위스 생갈렌 수도원 도서관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유리 상자 속에 펼쳐져 전시된 책의 한 페이지가 눈에 들어왔다. 양피에 필사한 책의 해설이 영어로 번역돼 있었다. 이 책은 630~650년께 아일랜드에서 여러 저자가 연구한 인간 품성의 오용에 관한 자료를 엮은 것이라고 한다. 책 제목은 《세상의 12가지 남용에 대하여》다.

12가지 남용이란 다음과 같다. ①현자라 자처하나 선한 일을 실행하지 않는 이 ②나이 들어 종교가 없는 이 ③복종을 모르는 젊은이 ④자선을 하지 않는 부자 ⑤겸양을 모르는 여인 ⑥용기가 없는 귀족 ⑦목소리가 큰 크리스천 ⑧겸손하지 않은 가난한 자 ⑨공정하지 못한 왕 ⑩태만한 종교 지도자 ⑪질서가 없는 커뮤니티 ⑫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 책에서 지적한 남용을 거꾸로 짚어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똑똑한 사람은 말을 많이 하기보다 선행을 실천하고, 노인은 편견과 아집에 사로잡히는 것을 경계하며, 젊은이는 먼저 경험한 사람들의 조언을 귀담아듣고, 부자는 베풀고, 여성은 마땅히 해야 할 역할에 더욱 전념하고, 귀족은 더 희생하는 결단을 내리고, 종교인은 목소리를 낮추고, 가난한 자는 반성하고, 왕은 약자를 보호하되 강자를 격려하고, 종교 지도자는 신의 가르침을 부단히 실천해야 하며, 사회 구성원은 질서 유지에 힘쓰고, 국민은 법을 지켜야 한다.

각자 처한 상황과 위치에서 어떤 덕목을 가장 우선적으로 실행해야 실제로 원하는 것을 더 얻을 수 있는지 제시하고 있다. 그렇게 할 때 갈등이 저절로 풀리고 새로운 갈등의 원인이 소멸될 수 있다. 1000년 전에 쓴 책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실행해야 하는지 간결하고도 힘있게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