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의 생활 속 경제이야기] 지금의 돼지를 만든 건 '경제적 필요'
입력
수정
지면A33
박정호 < KDI 전문연구원 >
돼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뚱뚱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흔히 보이는 살색 돼지는 우리네 전통 돼지와는 거리가 멀다. 세계적으로 돼지의 품종은 100여 종에 달한다. 우리의 전통 돼지는 주로 만주지역에 서식하던 흑돼지로, 고구려 시대에 한반도에 들어와 일제 강점기까지 이어져 왔다. 오늘날 흔히 접하는 돼지는 전통 돼지와는 거리가 먼 외래종이거나 외래종과 교배된 잡종 돼지다.1920년대 들어 조선총독부는 우리 전통 돼지인 재래 돼지가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외래종으로 대체하는 사업을 추진한다. 1927년 발간된 조선총독부 ‘권업모범장’에는 ‘조선의 돼지는 체격이 왜소하고 비만도가 낮을 뿐만 아니라, 성장하는 데 오래 걸리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열등하다’고 기록돼 있다.
실제 우리네 재래 돼지는 80㎏ 수준까지만 크지만, 상업적으로 사육되는 외래 돼지는 100㎏ 넘게 성장한다. 조선총독부는 외래종인 버크셔종과 재래 돼지를 교배하기 시작했고, 1970년대 요크셔종을 대거 도입하면서 재래 돼지가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돼지가 지닌 새로운 경제적 가치가 주목받고 있다. 돼지와 사람은 8000만 년 전 공통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왔다고 한다. 인간과 유사한 유전자를 9000개 가까이 보유하고 있다. 인간과 돼지의 몸무게가 비슷한 경우 장기의 크기와 모양 또한 비슷하다. 이식용 장기를 얻을 수 있는 동물인 것이다. 돼지를 ‘인간화된(humanized) 동물’로 개발하는 나라도 많다. 앞으로 어떤 또 다른 경제적 요인이 돼지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