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용환과 스틱이 걸어온 길…한국 자본시장 성장의 '축소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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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위기를 기회로 - 창업 기업인의 꿈과 도전도용환 스틱인베스트먼트 회장이 신한생명을 나와 스틱투자자문을 차린 건 1996년. 외환위기 직전이었다. 1년 뒤 위기가 터지자 일부 증권사가 해외 투자자들을 스틱에 소개했다. 싼값에 한국 기업에 투자하려는 외국인이었다. 성사된 거래는 한 건도 없었다. 도 회장은 “당시엔 그들이 쓰는 용어조차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지만 투자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배우는 기회가 됐다”고 했다.
도 회장과 스틱인베스트먼트가 걸어온 길은 외환위기 이후 변모한 한국 자본시장의 축소판이다. 그는 “지난 20여 년 동안 자본시장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이 바뀌었다”고 회고했다.도 회장이 스틱IT투자를 설립한 건 벤처붐이 일던 1999년.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벤처캐피털이 사업계획서에 ‘인터넷’이라는 단어만 들어가면 ‘묻지마 투자’를 하던 시절이었다. 스틱은 달랐다. 엔지니어 출신을 중용해 투자 업무에 투입했다. 사업성이 의심되는 회사에는 투자하지 않았고,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어도 상용화가 가능한지 철저히 따져물었다. 2000년 정보기술(IT) 거품 붕괴 과정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배경이다.
생존은 성장의 기회로 이어졌다. 스틱이 전문성을 쌓은 IT 분야 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하자 국내외 투자자금이 몰려들었다.
스틱은 사모펀드(PEF) 시장에 진입하면서 ‘규모의 경제’를 갖춰나갔다. 때마침 정부는 ‘토종 사모펀드를 육성한다’며 2004년 간접투자자산운용법을 통과시켰다. 스틱은 2006년 첫 PEF를 조성했다. 중견 단계로 성장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그로스 캐피털’ 펀드였다. 이후 중견기업 경영권 인수(바이아웃)로 영역을 넓혔다.2012년에는 대기업 구조조정 등에 투자하는 스페셜시추에이션(특수상황) 펀드를 조성했다. 도 회장은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의 기술 우위와 성장성은 잘 먹히지 않게 됐다”며 “특수상황 투자가 당분간 유효한 투자 전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 회장은 동남아시아 등 해외 투자를 한국 자본시장과 스틱의 미래로 제시했다.
“한국은 너무 제조업 수출에만 목을 맵니다. 이제는 자본을 수출할 때입니다. 자본 수출로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시장을 선점하는 데 전력투구할 것입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