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또 사고 난 뒤에야 움직인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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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현 정치부 기자 alpha@hankyung.com“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충분히 공감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과 논의해 입법에 반영되도록 하겠습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3일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교수 사건과 관련해 당 차원의 입법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각계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바른미래당과 정의당도 같은 의견을 내놨다. 관련 상임위인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오는 9일 전체회의를 열고 긴급 현안보고를 받기로 했다.각 당이 강조한 ‘국회의 노력’은 지난해 말 복지위 문턱을 넘지 못한 의료법 개정안을 두고 한 얘기다. 작년 7월 발의된 응급의료법 개정안은 지난달 27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은 응급실에서 발생하는 폭행 사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반면 전체 의료 현장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처벌하기 위한 의료법 개정안은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응급의료법 개정안과 같은 시기에 발의됐지만 “시간을 두고 보자”는 이유로 발목이 잡혔다. “의견차가 큰 쟁점 법안은 아니지만 비슷한 법안이 몇 건 있어서”라는 게 복지위 설명이다.
임 교수 사건을 막을 수 있었던 정신건강복지법 일부 개정안도 복지위에 묶여 있다. 지난해 10월 발의됐지만 상임위 안건으로 상정도 되지 못했다. 이 법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있는 중증 정신질환자가 병원에서 퇴원할 경우 본인이나 보호자 동의 없이도 이 사실을 담당 정신건강복지센터에 통보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당은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국회의 ‘늑장 입법’은 ‘윤창호법’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음주운전 처벌 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여야 의원들에 의해 숱하게 발의됐으나 사고 발생 이후에야 법안 처리에 속도가 붙었다. 국회의 핵심 기능은 입법이다. 입법 미비도 아닌, 법안 심사와 처리를 제때 하지 못해 계속 인명 사고가 발생하는데도 여야를 통틀어 사과하는 의원 한 명 없는 게 우리 국회의 현실이다. 사고를 예방하기는커녕 사람이 죽은 뒤에야 움직인다는 국회에 ‘사후약방문’이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