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로 간 특활비' 뇌물 첫 인정…박근혜 형량 늘어나나

"2016년 9월 2억원, 박 전 대통령에 직접 전달…직무 관련성 인정"
"국정원장 '회계관계 직원' 해당"…엇갈린 판단에 대법서 결론 날 듯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로 건네진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가 사실상 처음으로 법원에서 '뇌물'로 인정됐다.일부 금액에 대한 판단이긴 하지만 그간 '횡령·국고손실'로만 인정되던 판례를 뒤집은 것으로, 향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특활비 사건 2심을 비롯한 관련 사건들의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서울고법 형사4부(김문석 부장판사)는 4일 이재만·안봉근·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의 특활비 수수 사건 항소심에서 "2016년 9월 청와대로 건넨 2억원은 뇌물로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이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3년 5월∼2016년 9월 국정원장들에게서 특활비 35억원을 상납받는 데 관여한 혐의로 기소됐다.이들의 1심은 물론이고 같은 범죄로 기소된 전직 국정원장들과 박 전 대통령의 사건에서 법원은 줄곧 이 돈 모두가 뇌물이라고 볼 수 없고, 다만 횡령·국고손실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왔다.

국정원장들이 청와대에 전달한 돈이 위법한 예산 지원이기는 하지만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관계가 없으므로 뇌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문고리 3인방의 2심 재판부는 이 가운데 이병호 전 국정원장이 보낸 2억원은 뇌물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내렸다.이 돈은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지자 국정원의 특활비 상납이 중단된 이후 한 차례 건네진 것이다.

국정원의 제안과 청와대의 '명절 격려금' 요청이 오간 결과 이헌수 전 국정원 기조실장이 정호성 전 비서관을 만나 2억원을 줬다.

재판부는 "기존에 매달 상납한 특활비가 이재만 전 비서관에게 전달돼 그 관리 하에 사용한 것과 달리 이 돈은 정 전 비서관을 통해 박 전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사용됐다"고 지적했다.이어 "국정원의 인사·조직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대통령에게 거액의 금품을 제공한 것만으로도 직무집행의 공정성을 의심받기 충분하다"며 "어떤 특혜를 준 적이 없더라도 대통령의 직무에 관해 교부한 뇌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이 받은 국정원 특활비가 뇌물로 인정된 것은 처음이다.

그간 법원은 안봉근 전 비서관이 박 전 대통령과 무관하게 받은 1천350만원,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받은 1억원 등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뇌물로 인정해 왔다.

특히 이번에 뇌물로 인정된 2억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특활비 수수 사건 1심에서는 아예 무죄로 판단된 부분이다.

박 전 대통령의 1심 재판부는 이 돈이 이병호 전 원장과 이헌수 전 기조실장 등이 자발적으로, 박 전 대통령 뜻과 무관하게 지급한 것으로 봤다.

그 결과 33억원의 국고손실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6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재판부는 이를 박 전 대통령이 받은 뇌물로 규정했다.

박 전 대통령의 2심 재판부가 이 판단을 받아들인다면 형량이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횡령 혐의와 관련해서도 재판부는 향후 박 전 대통령을 비롯한 관련자들의 형량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는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국정원장들은 당시 특활비를 상납한 국정원장들이 '회계관계 직원'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말 전직 국정원장들의 항소심 재판부가 이들을 회계관계 직원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과 배치된다.

이에 따라 당시 재판부는 전직 국정원장들에게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혐의가 아닌 단순 업무상 횡령죄를 적용해 일부 감형했다.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죄는 돈을 횡령한 사람이 회계 관계 직원 등의 책임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회계 관계 직원'에 해당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즉 국정원장들이 회계 관계 직원에 해당해야 이들의 국고손실 혐의도 유죄로 인정되는 것이다.이를 두고 하급심 판단이 엇갈림에 따라, 최종 결론은 대법원 판단으로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