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청사에 고립된 사무관들…"국·과장 얼굴 보기도 힘들어"

Cover Story - 5급 사무관의 세계

정책 조율 힘든 환경이 문제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은 이번 내부고발 과정에서 “세종시에 있는 행정부는 제대로 된 업무 지시 및 보고 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청와대가 현실과 어긋난 지시를 하면 실무진이 즉시 문제점을 보고해야 바로잡을 수 있는데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 의사소통이 어렵다는 문제제기다. 그는 “미국 재무부는 백악관 바로 옆 건물이라 정책 협의가 쉽다”고 덧붙였다.

세종시에 있는 중앙부처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은 이 같은 지적에 대부분 공감하는 분위기다. 정부세종청사에서 청와대와 정부서울청사가 있는 서울 중심부로 가려면 3시간 가까이 걸린다. 정부세종청사에서 KTX 오송역까지 걸리는 시간만 30분이 넘는다. 업무 현안을 조율하려면 이 같은 이동을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 자연히 주로 서울청사에 있는 국장급 이상 공무원과 세종청사에 있는 사무관이 만날 기회는 줄어든다.간부와 사무관 간 ‘소통 부재’는 정책의 질적 저하로 이어진다. 경제부처 A국장은 “세종에 있는 부하 직원들을 불러서 옆에 세우고 보고서에 빨간 줄을 그어 가며 도제식 교육을 하고 싶은데 주로 서울에 있다 보니 여의치 않다”고 털어놨다.

사무관들도 불만이 많다. 경제부처 B사무관은 “국장급 이상은 얼굴을 보기도 힘들고 요청한 자료나 보고서를 카카오톡으로 보내는 게 대부분”이라며 “보고서를 작성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울 기회는 적은데 혼나기만 하니 의욕이 떨어진다”고 밝혔다.

세종시 이전 후 사무관들의 개인적 인간관계까지 단절되는 것도 문제다. 경제부처 C서기관은 “정부청사가 과천에 있을 때는 사무관이 기업인들의 하소연을 듣고 아이디어를 얻어 정책에 반영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사회 부처에서 근무하는 D사무관도 “서울에 있는 약속장소까지 오가는 데 5~6시간이 걸린다”며 “주말에도 사람들을 안 만나는 경우가 많아 새로운 정보를 접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지난달 취임식 직후 간부회의에서 “국장과 과장들은 되도록 세종에 머무르며 후배들을 꼼꼼히 지도해달라”고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홍 부총리는 “정부청사가 세종으로 이전한 뒤 새로 들어오는 사무관들이 능력을 제대로 키우지 못할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국장과 과장이 사무관들과 소통하며 정책 결정 과정을 공유하고 업무를 지도해야 좋은 정책이 나온다는 취지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