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현성당 아래 골목골목 숨겨진 맛과 멋…'소확행' 찾아 추억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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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향기서울은 매년 1300만 명이 넘는 외국인 관광객이 찾는 세계적인 관광지다. 볼거리도 많고 빼어난 맛집도 많지만 의외로 서울시민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에게 서울 관광의 매력이 과소평가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N서울타워나 고궁, 인사동 같은 명소가 아니라 독특한 박물관과 역사의 흔적이 묻어 있는 사색길, 음식과 함께 떠나는 골목여행까지 서울의 이색 여행지로 떠나보자.
서울의 재발견
이색 여행지
우리옛돌박물관 - 민초의 삶을 더듬다.서울에는 200개가 넘는 박물관이 있지만 성북동 북악산 자락에 있는 ‘우리옛돌박물관’은 다른 어떤 박물관보다 독특한 풍광을 지닌 곳이다. 우리옛돌박물관은 2000년 경기 용인에서 문을 열었다가 2015년 성북동으로 자리를 옮겨왔다. 서울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는 우리옛돌박물관은 사대부 무덤에 세운 문인석이나 동자석 혹은 마을 어귀에 세워진 벅수까지 이름 그대로 다양한 옛날 돌로 가득하다. 우리옛돌박물관은 국내외 흩어져 있던 한국석조유물을 한자리에 모아 건립한 세계에서 유일한 석조전문박물관이다. 대부분 돌이 무덤에서 가져온 것이기에 일면 께름칙할 수도 있지만 사연을 알고 보면 우리 선조들의 흔적이 진득하게 묻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박물관 1층은 환수 유물관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밀반출된 문인석을 다시 환수해 47점의 문인석을 전시한 공간이다. 유물관 입구에는 수(壽) 복(福) 강(康) 녕(寧)이라는 네 글자가 새겨진 홀이 놓여 있다. 홀이란 신하가 임금을 알현할 때 왕에게 아뢸 말씀을 적어놓은 두 손에 쥐던 패다. 원하는 홀을 들고 전시실을 걸으며 다양한 유물을 둘러볼 수 있다.박물관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2층에 있는 벅수관이다. 벅수는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장승을 부르는 순우리말이다. 옛날 마을의 입구나 길가에는 사람 얼굴을 한 벅수가 서 있었다. 전염병을 옮기는 역신이나 잡귀들이 겁을 먹고 마을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옛날 사람들의 소박한 소망이 반영된 것이다. 게다가 벅수가 복을 가져다준다는 믿음까지 있어 벅수에게 크고 작은 소원을 빌기도 했다. 벅수관 옆에는 무덤의 수호신인 동자관이 있다. 동자는 도교에서 나온 개념이다. 신선 곁에서 시중을 들던 귀여운 어린아이는 이후 다양한 종교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불교에서는 부처님 곁을 지키고 유교에서는 무덤 주인의 심부름을 하는 존재다. 다양한 종교에서 어린아이가 매번 등장하는 것은 순수한 마음이 종교의 본질이라는 방증일 것이다. 동자관 입구와 한쪽 면에는 소원을 비는 체험공간이 있어 자신의 소원을 동자석에 빈 뒤 소원의 벽에 꽂을 수 있다.한국 여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자수관도 흥미롭다. 박물관 3층에서 밖으로 나오면 야외전시관이 이어진다. 야외전시장에 있는 문인석은 미국의 저명한 박물관인 스미스소니언 한국관에 전시됐던 작품이다.(1월14일까지 유지보수를 위해 잠정 휴관한다)
사색의 공간 시립묘지 망우리공원
죽은 자의 자리는 산 자와 멀리 있어야 한다는 관념 때문인지 망우리 공동묘지를 찾는 것은 성묘할 때나 특별한 날이 아니면 별로 없을 것이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거리가 가까운 유럽은 대개 묘지가 공원으로 조성돼 있는데 망우리공동묘지도 공원화 작업을 거쳐 이제 어엿한 도심 속 사색공원으로 자리 잡았다. 망우리공원은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개장해 1973년까지 4만7000여 기의 무덤이 들어섰다. 이름 없는 일반인이 대다수지만 소파 방정환, 화가 이중섭, 시인 박인환, 한용운 선생 같은 문화예술계 인사와 애국지사들의 무덤이 안치돼 있어 지난 역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귀중한 역사 체험 장소이기도 하다.
스산할 것이라는 편견과 달리 망우리 공원은 울창한 숲의 모습으로 사람들을 반긴다. 이미 고인이 된 이들의 묘비명을 읽으며 자신의 삶을 찬찬히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름이 높은 사람도 가난한 사람도 부유한 사람도 고관대작도 결국 한 줌 흙으로 돌아가 한 평도 안 되는 땅에 묻힌다.
망우리 공원에는 무덤마다 곡진한 사연이 숨어 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이는 화가 이중섭이었다. 평안남도 부농의 막내로 태어났고 잘생긴 얼굴에 운동과 노래까지 잘했지만 화가가 된 이후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책을 팔아 호구지책을 하려 했지만 돈을 중간에서 후배가 횡령하고 개인전은 실패했다. 일본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이후 우울증에 황달, 영양실조, 간장염까지 걸렸으며 말기에는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다 굶어 죽고 말았다. 무연고자로 처리됐다 고향 친구에게 극적으로 발견됐다. 이중섭 유해는 화장돼 반은 망우리에 묻히고 나머지 반은 일본의 처가 묘에 합장됐다.
지금이야 그의 작품들이 천정부지로 가격이 오르고 근대 미술을 대표하는 이로 칭송받지만 그의 죽음이 얼마나 쓸쓸했는지 기억하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이중섭과 함께 근대 미술의 최고봉 중 한 사람은 이인성이었다. 천재적인 솜씨를 지녔지만 적도 많았던 독특한 사람. 그의 묘비는 마치 이젤처럼 생겨서 화가로 살았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30년 넘게 망우리 공원의 묘비를 읽고 역사를 기록한 김영식 작가는 수많은 근현대 인물을 한곳에서 만날 수 있고 다른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진귀한 여행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망우리 공원을 훌륭한 인문여행지라고 했다. 거기에 더해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할 수 있는 사색의 공간으로 부르고 싶어졌다.
음식 먹고 골목 체험하는 가스트로투어
‘서울가스트로투어’는 음식 테마여행의 대표 브랜드로, 서울을 지역별로 나눠 음식문화 전문가 및 지역 전문가와 함께 음식을 시식하며 걸으면서 지역의 역사적인 장소에 대한 설명을 듣는 방법으로 진행된다. 대형 버스에 몸을 싣고 그저 둘러보듯 다니는 여행이 아닌, 직접 걸어 다니며 지역사회를 느끼고 유명 맛집에서 음식을 시식할 수 있어 체험자들이 점차 늘고 있다. 가스트로투어 중 중림동 코스는 인기가 높다. 서울문화역에서 출발하는 중림동 코스는 서울로 7017에 올라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서울로에서 중림동 쪽으로 내려가면 손기정공원 쪽으로 난 길이 보이고 멀리 보이는 지금의 삼성아파트 일대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무대가 됐던 곳이다. 중림동 가스트로투어의 첫 번째 맛집은 의정부식 부대찌개집이다. 부대찌개를 즐기고 난 뒤 서울역에서도 보이는 작은 언덕에 있는 약현성당을 지나게 된다. 약현성당은 유명한 드라마 촬영지며 한국에서 최초로 설립된 고딕 양식의 가톨릭 성당이다.
두 번째 맛집은 중림동에 있는 오래된 한옥에 입주해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홍합밥 전문점이다. 생홍합을 곱게 다져 밥과 함께 지어 고소하면서도 감칠맛이 일품이다.
독특한 사연을 지닌 중림동 커피숍이 세 번째 맛집이다. 유명 증권회사를 다니던 커피숍 주인은 커피의 향과 맛에 반해 회사를 그만두고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아 커피숍을 열었다. 전문적인 솜씨로 로스팅한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케냐산 커피를 즐길 수 있다. 한국경제신문사 앞에 있는 횟집에서 신선한 선어로 만든 회정식 요리를 마치면 투어가 끝난다. 서울가스트로 투어는 ‘남대문&명동’ ‘중림동’ ‘시청&광화문’ 등 3개 코스로 이뤄져 있으며 투어에 대한 문의와 예약은 서울가스트로투어로 하면 된다. 3명 이상부터 예약할 수 있고, 요금은 코스별로 6만5000~8만원이다. 강태안 서울가스트로투어 대표는 “골목 체험 여행과 음식이 결합된 가스트로 투어는 유럽에서는 인기 투어 코스”라며 “가스트로 투어가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시대에 맞는 체험 여행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글·사진=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