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짜 新산업이라던 ESS…불 때문에 '발등의 불'

작년에만 화재사고 16건
원인 규명에 최소 3개월
정부, 이번주 사고조사委 출범
업체들 비상 경영체제 돌입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배터리업계에서 에너지저장장치(ESS)는 ‘알짜 신산업’으로 꼽혔다. ESS는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나 저렴한 심야 전력을 미리 저장해뒀다가 꺼내 쓰는 장치로, 배터리가 핵심 부품이다. 신재생에너지 바람을 타고 ESS는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정부의 각종 지원책 덕분에 국내에서는 공급이 달릴 정도였다.

하지만 작년 한 해 동안 16건의 ESS 화재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설계 구조가 복잡해 화재 원인도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다. 원인 규명에는 적어도 3개월 이상 걸릴 것으로 정부는 예상하고 있다. 그때까진 수요가 줄어도 마땅히 대응할 방안이 없다. ESS업체들이 비상 체제에 돌입한 이유다.
6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이번 주 ESS 사고조사위원회를 출범시킬 예정이다.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과 산업기술시험원, 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 등 시험기관과 학계 전문가들이 조사위원으로 참석한다. 제조사별로 제품 사양이 다양한 데다 각기 다른 조합으로 실험하는 과정이 필요해 화재 원인을 밝히는 데 길게는 5개월 이상 걸릴 전망이다.

현장은 ‘재난 상황’에 가깝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11월부터 전국 1253개 ESS 사업장에 대한 정밀안전진단을 하고 있다. 백화점, 쇼핑몰 등 다중이용시설은 화재 사고가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산업부 공무원들이 현장을 직접 방문해 가동 중단을 요청하고 있다.관련 업계는 “ESS 산업 생태계 모두가 공멸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ESS 설치 자체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규제 방안이 마련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ESS업계는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육성 정책을 발판으로 성장했다. 정부는 ESS 설치에 전기요금 특례 정책 등 각종 인센티브를 시행해왔다. 새로 설치된 ESS는 2016년 66개였지만 2017년 265개, 지난해 782개로 급증했다. 전력변환장치(PCS) 등 중소기업들이 주로 진출한 분야의 위기감은 더욱 크다. 지원책이 축소될 경우 관련 생태계도 위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ESS업계 관계자는 “잘못된 부분만 메스로 도려낸 뒤 봉합해야 하는데, 원인 규명이 어렵다는 이유로 섣불리 규제에 나설 경우 업계 전반이 고사할 우려가 있다”며 “국내 실적을 발판으로 해외 수주를 한 기업들은 수출에도 비상이 걸렸다”고 말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