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협상 대신 제목소리만 높이는 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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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필 정치부 기자 jp@hankyung.com“협치는 뒷전이면서 말만 앞세우고 있다.”
정치권이 새해 벽두부터 난제(難題)들을 앞다퉈 쏟아내고 있다. 선거제도 개혁, 국회선진화법 손질, ‘적자국채 의혹’ 국정조사 등이 대표적이다. 국회 관계자는 “실현 가능성은 제쳐두고 진정성 없는 선명성 경쟁만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당장 문희상 국회의장이 던진 선거제 개혁 요구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문 의장은 지난 3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정치개혁의 핵심은 선거제 개혁이고, 더 나아가서 개헌까지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의장 발언에는 그러나 ‘어떻게’가 빠져 있다. 선거제 개혁을 다루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특위’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매년 구성되고 있다. 올해도 6월까지 정개특위 활동시한이 연장됐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입법부 수장으로서 ‘당위성’만 얘기하는 건 무책임하다”고 지적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같은 날 국회선진화법을 대폭 손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의원 한 명과 한 정당이 반대하면 과반이 찬성해도 법을 통과시킬 수 없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홍 원내대표 속내는 당론 입법인 ‘유치원 3법’의 신속한 처리에 있다. 최장 330일 이내에 쟁점 법안을 처리하도록 한 ‘패스트트랙’ 제도를 ‘60일 이내’로 줄이자는 게 민주당 안이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은 자유한국당 동의가 없으면 공염불이나 마찬가지다. 국회 관계자는 “야당으로선 여당의 ‘입법 독주’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장치가 국회선진화법인데 쉽게 양보할 수 있겠냐”고 지적했다.
실현 불가능한 요구를 하는 건 한국당도 마찬가지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청와대의 적자국채 발행 압박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KBS 수신료의 전기요금과 분리 징수 주장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를 논의할 상임위원장은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국정조사는커녕 현안 질의를 위한 상임위조차 열 수 없다.
여야가 내세우는 주장들은 이처럼 모두 상대방 동의 없이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어려운 과제들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진정성 있는 요구라면 여야가 당장 협상부터 제의해야 한다”며 “하지만 올 들어 원내대표 간 공식 회동은 한 차례도 없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