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노동정책 과속페달 밟은 정부, 탈 나자 '血稅 땜질' 덕지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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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2019 - 이것만은 꼭 바꾸자서울 동대문에서 의류도매업을 하는 A사장은 지난해 말 근로복지공단 서울지역본부 직원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분 일부를 예산으로 지원해주는 일자리안정자금을 신청해 받아가라’는 요청이었다. A사장은 “우리 직원들은 이미 최저임금 이상을 받고 있어 일자리안정자금이 필요 없다”고 했으나 근로복지공단 직원은 “식대 등 각종 수당을 제외하는 식으로 (최저임금 미만을 주고 있는 것처럼) 기준에 맞춰줄 수 있다”며 “사업자번호만 불러달라”고 재촉했다. A사장은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일자리안정자금이 눈먼 돈처럼 쓰이는 것 같아 씁쓸했다”고 말했다.
9. 과속 부작용 세금 땜질 그만!
"최저임금 인상 부작용 막기위한 예산
'일자리 안정자금+근로장려금+두루누리'
1년새 4조6500억원→9조원 두배 급증
연 매출 10억 자영업자도 세금 공제 등
엉뚱한 곳에 혜택 돌아가는 일 비일비재
당정, 택시업계 '카풀 반발' 무마용으로
국민 세금 들어가는 '기사 월급제' 제시"
일자리안정자금 ‘연말 밀어내기’정부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반(反)시장적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다 탈이 나자 국민 혈세로 ‘땜질’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혜택이 엉뚱한 곳에 돌아가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에 지급하는 일자리안정자금이 대표적이다. 최저임금이 지난해 16.4%, 올해 10.9% 오르는 등 2년 연속 두 자릿수 인상률을 기록하자 인건비 부담을 견디다 못해 직원을 해고하거나 신입사원을 뽑지 않는 기업이 많아지고 있다. 정부는 일자리를 줄이지 말라는 취지에서 지난해 일자리안정자금을 신청한 사업주에게 월 최대 13만원(직원 한 명당)을 줬다.
정부는 지난해 일자리안정자금을 대규모로 지급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용 상황이 점점 악화되자 근로장려금(EITC)과 두루누리사업까지 최저임금 인상 대책에 끼워넣었다. 근로장려금은 일은 하지만 소득이 많지 않은 가구에 정부가 돈을 주는 사업이고, 두루누리사업은 저소득 근로자의 국민연금·고용보험료 일부를 정부가 지원하는 사업이다.정부는 지난해 1조3000억원이던 근로장려금 예산을 올해 네 배 수준인 4조9000억원으로 늘렸다. 두루누리사업 예산도 작년 9000억원에서 올해 1조3000억원으로 증가시켰다. 최저임금 인상 부작용을 막겠다며 편성한 재정지원 패키지(일자리안정자금+근로장려금+두루누리사업) 규모는 작년 4조6500억원에서 올해 9조원으로 1년 만에 두 배가 됐다.
정부 지원이 꼭 필요한 곳에 돌아가면 다행이지만, 엉뚱한 곳으로 흘러들어가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일자리안정자금의 경우 ‘신청률이 저조하다’는 지적을 받은 정부가 작년 말 대거 ‘밀어내기’를 한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작년 12월14일까지 72% 수준이던 예산 대비 일자리안정자금 집행률은 열흘 뒤인 24일에는 83%로 10%포인트 이상 상승했다. 정부가 자격 요건 등의 문제로 신청하지 않은 사업자에게까지 연락해 일자리안정자금을 받아가도록 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세금으로 대충 메우겠다”는 정부의 안일한 인식작년 7월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된 근로시간 단축(주 52시간 근로제)도 부작용을 호소하는 기업이 속출하자 정부가 나랏돈을 동원했다. 정부 지원이 영세기업뿐 아니라 대기업에까지 돌아가 논란이 됐다.
300인 이상 대기업은 작년 7월부터 의무적으로 주 52시간제를 시행하고 있다. 정부는 이들 대기업이 근로자를 신규 채용하면 1인당 월 최대 60만원을 최대 2년간 지원한다. 2020년부터 근로시간이 단축되는 300인 미만 사업장은 2019년 7월 전에 근로시간을 선제적으로 줄이면 신규 채용자 1인당 월 최대 100만원을 3년간 지원한다. 재원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낸 준(準)조세 성격의 고용보험기금으로 충당한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의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를 위해 올해부터 카드 매출 세액공제 한도를 5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확대했다. 기준이 연매출 10억원 이하 자영업자라 중소 자영업자뿐 아니라 고소득 자영업자까지 혜택을 받게 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카풀에 대한 택시기사들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택시 월급제’를 내놨다. 관가에서는 “예산으로 택시회사를 지원하게 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제도가 잘못돼 부작용이 발생하면 제도를 바꿀 생각을 해야 한다”며 “세금으로 대충 메우겠다는 식의 안일한 정부 인식은 정책 목표도 달성하지 못하고 재정도 낭비하는 두 가지 실패를 불러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