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용배상·레이더 충돌에도…존재감 없는 '강경화 외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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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욕을 하도 먹어서 오래 살겠어요.”
韓日관계 악화 '출구' 못찾는데
총리실·국방부에 밀려 침묵
"전략 부재로 '욕받이' 전락"
외교부 내부서 불만 목소리
박동휘 정치부 기자
요즘 외교부 관료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미국, 일본 등 우방과 잇따라 마찰이 빚어지면서 비난의 화살이 외교부로 향하자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청와대의 나팔수’로 전락한 것에 대한 자괴감의 표현이기도 하다.유엔 출신인 강경화 장관이 외교부 수장으로 취임한 이래 외교부는 끊임없이 ‘존재감’ 논란에 휩싸여 있다. 한국과 미국이 서로 다른 북한 전략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양국 간 잠재적인 갈등 요인을 잠재운 공(功)을 외교부에 돌리는 이들은 거의 없다. 한 정부 고위 인사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대미 협상 창구 역할을 잘한 덕분에 노무현 정부 때와 같은 거친 갈등이 표출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서 시작된 한·일 간 외교 마찰이 ‘레이더 갈등’으로 번지며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지만 외교부는 활동 공간을 찾지 못하고 있다. 강제징용 및 화해·치유재단 해산 등 과거사 관련 대책은 총리실이 총괄하고 있다. 범부처 협의가 필요하다는 게 이유지만, 외교부가 일부 시민단체에 휘둘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레이더 갈등은 국방부와 일본 방위성 간 국제 여론전으로 번지고 있다.
강 장관은 벌써 취임 3년 차다. 2016년 6월 취임사에서 강 장관은 크게 세 가지를 언급했다.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북핵 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겠다고 했다. 일본에 대해선 과거를 직시하면서도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맺겠다고 강조했다. 잦은 야근과 과중한 서류 업무를 없애는 등 외교부 내부 혁신도 공약했다. 강 장관의 약속 중 어느 것 하나라도 제대로 이행됐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외교부가 ‘욕받이’로 전락한 데엔 수장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많다. 예컨대 1년 반이 넘는 동안 강 장관의 ‘메시지’ 대부분이 ‘북한’에 집중돼 있었다. 통일부와 외교부의 역할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겠다는 비아냥까지 나올 정도다. 한 전직 외교관은 “중요한 외교안보 현안은 대통령이 끌고 갈 수밖에 없다”며 “외교부는 이를 뒷받침하되, 180여 개 대사관을 활용한 외교의 확장을 추진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선진국 외교의 흐름이 안보보다는 경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전략 부재를 지적하는 비판도 나온다. 강제징용 판결만 해도 오래전부터 예견돼 있었다. 사법부 탄핵의 빌미가 됐던 ‘정치 이슈’였다. 국민 정서상 사법부와 외교부가 한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웠다. 문제는 사후 대처다. 전쟁 와중에도 물밑 외교 채널은 유지돼야 하는데 외교부에 위기대응 계획이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의 전문 외교관 홀대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미·중·러·일 등 4강 대사만 해도 청와대의 논공행상 자리가 된 지 오래다. 요즘 식자층 사이에선 한국 외교를 구한말에 비교하는 이들이 많다. 미·중 패권 다툼, 한반도 비핵화 등 동북아 정세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격랑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데, 우리의 준비가 제대로 돼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강경화 외교부’가 뼈아픈 구한말 외교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