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청춘은 죄가 없다

신동우 < 나노 회장 dwshin@nanoin.com >
교수로 시작해 기업가로 변신했다. 특별한 계획을 세워 사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1998년 외환위기 여파로 취업을 못 하는 제자들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어설프게 시작한 대학 벤처기업이 성장하며 살아남았다. 그런 과정에서 교수직은 10년 앞선 명예퇴직으로 종료했다. 희생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선생의 책임감으로 시작해 기업의 책임감으로 버텨왔다.

나이가 들면서 남에게 들은 말이나 책에서 본 글을 그대로 전하는 것은 삼갔다. 내가 경험했거나 뼈저리게 깨달은 것만 말했다.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하는 청춘에게 창업을 권유하지 않았다. 우리 현실에서 그들이 겪어야 할 앞길이 너무 가혹하기 때문이다. 가끔 창업을 권유하는 교수에게 자녀에게도 창업을 권하는지 물으면 대부분 대답이 없다.그렇다고 일자리가 넘치는 일본 기업에 취업을 권유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일본의 특이한 조직 문화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청춘을 용병으로 내모는 것만 같다. 그나마 게임과 인터넷산업은 청춘들이 창업해 큰돈을 번 몇몇 롤모델이 있기에 조심스럽게 권했지만 가장 성공한 게임 기업가가 앞날이 보이지 않아 매각한다고 하니 이 또한 이제 청춘들의 몫은 아닌 것 같다.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은 직업 안정성과 수입 그리고 사회적인 인식에서 청춘들의 우선순위다. 그러나 실제 극한의 경쟁을 뚫고 합격하면 그 조직의 무게가 누르는 힘이 너무 강해 개인의 창의성이 숨 쉴 공간이 없음을 절감하게 된다. 청춘이 교육을 받아온 환경과 너무 다른 조직 문화 때문에 이직과 퇴직이 잦다. 장년은 청춘을 탓한다.

지금의 조직 문화로는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도 청춘을 제대로 품지 못한다. 우리 현실에서 창업이나 해외 취업도 청춘의 미래 경쟁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노인과 장년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정신과 전략이 우리 청춘의 미래 경쟁력을 담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산업화와 민주화 기적을 달성한 학습효과가 지금의 청춘에게는 절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지금 은퇴하는 장년은 청춘 시절 희망이 있었다. 앞선 세대의 희생이 그 희망을 만들었다.

우리 모두 캄캄한 터널에서 절망하는 청춘에게 희망을 찾게 해야 한다. 희망이 있어야 꿈을 가진다. 이념과 권위와 단기간의 전략은 어둠을 더 짙게 할 뿐이다. 포용과 실용과 시간이 희망의 빛을 찾는 나침반이 될 수 있다. 집 나간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의 심정을 가져야 한다. 더 미안하고 더 포용하는 자세로, 더 실용적이고 더 공정한 합의점을 같이 찾아가는 노력을 오랫동안 해나가야 한다. 청춘은 죄가 없다. 한없이 미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