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용갈등 새 국면…정부, 日 '외교협의' 요구 "면밀검토"

韓법원 日기업자산 압류 승인하자 日, 분쟁해결절차 착수
韓수용시 청구권협정 따른 첫 외교협의…불응뒤 '국장급협의서 논의' 제안할 수도
정부는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 일본이 한일청구권협정상의 분쟁해결 절차인 '외교적 협의'를 요청한 데 대해 9일 면밀히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일측의 청구권협정상 양자협의 요청에 대해 면밀히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사법 절차를 존중한다는 기본 입장 하에 피해자들의 정신적 고통과 상처를 실질적으로 치유해야 한다는 점과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하여 대응방안을 마련해 나가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러한 상황에서 불필요한 갈등과 반목을 야기하는 것은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며, 따라서 냉정하고 신중하게 상황을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일본은 이날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이 최근 강제동원 피해자 변호인단이 신청한 신일철주금 한국 자산 압류 신청을 승인한 데 대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3조'에 따른 '외교적 협의'를 요청했다.

일본 정부가 9일 이수훈 주일대사를 불러 한국 법원의 자산 압류 승인에 항의하고, 외교적 협의를 요청하면서 징용 배상 문제를 둘러싼 양국간 갈등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한일청구권협정 3조 1항에는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 체약국간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해 해결한다'고 돼 있다.정부가 일본의 '외교적 협의' 요청에 응하면 의제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이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는지에만 국한될 것으로 보인다.

한일 간에 지금까지 3조 1항에 따른 외교적 협의가 이뤄진 적은 없다.
그러나 정부 일각에서는 일본의 요청을 수용하는 데 대해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강제징용 배상 문제 외에도 한일 간에 풀어야 할 현안들이 많기 때문에 지금의 한일 국장급 협의처럼 보다 다양한 이슈를 다루는 채널을 가동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겠느냐는 점에서다.

강제징용 보상 문제에 대한 '외교적 협의'가 시작되면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다른 이슈들은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2015년 한일위안부 합의에 따라 설치됐지만 해산이 결정된 화해·치유재단에 대한 일본 출연금(10억엔) 처리 문제 등을 일본과 협의하자는 입장이지만, 일본 측은 위안부 합의의 착실한 이행만을 촉구하고 있다.

정부는 또 지난 2011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3조 1항에 따른 외교적 협의를 일본에 요청했지만, 일본이 '위안부 문제는 청구권협정에 따라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며 응하지 않았던 사례도 참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무엇보다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문제가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는지에 대해 한일 간 입장이 첨예하게 맞선 상황에서 '외교적 협의'로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도 희박하다.

이 때문에 일본이 결국 이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기 위한 명분을 쌓기 위해 '외교적 협의'를 요청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일본 측의 '외교적 협의' 요청을 거부할 명분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청구권협정에 대한 한일 간 입장 차이로 생긴 분쟁임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청구권협정에는 '외교적 협의'에서도 해결이 되지 않으면 한일 양국이 합의하는 제3국이 참여하는 중재위원회를 구성해 해법을 찾게 돼 있다.하지만, 우리 정부는 중재위는 해법의 하나로 염두에 두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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