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버시 침해에 흥분하는 건 데이터 혁명 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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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프라이버시 경제' 쓴 데이터 전문가 와이겐드“최근 독일에서 공직자들의 개인정보가 유출돼 논란이 됐습니다. 하지만 전화번호와 주소가 노출됐다고 마냥 흥분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반응입니다. 자신이 뽑은 선출직 공무원이 어디에 사는지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지 않을까요?”
"모든 게 녹음, 찍히는 사회
정보 노출 걱정할 게 아니라, 그 기록으로 뭘 할지 고민을
고객선호 파악이 기업 책무…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취향
빨리 읽고 실행하는 게 관건…정부도 데이터 전략 세워야"
최근 내한한 《포스트 프라이버시 경제》의 저자 안드레아스 와이겐드 미국 스탠퍼드대 소셜데이터연구소 대표는 지난 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키고 숨기는 프라이버시를 넘어 개인정보라는 데이터 자원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야 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아마존 수석과학자 출신인 그는 스탠퍼드대와 중국 푸단대 등에서 강의하며 글로벌 기업들에 데이터 관련 컨설팅을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출간된 책에서 그는 “프라이버시라는 낡은 개념에 갇혀 데이터가 주는 혜택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며 발상의 전환을 촉구했다. 자신이 만들어낸 데이터가 ‘나조차 몰랐던 나’를 형성하는 시대에 정보 공개를 두려워할 게 아니라 도리어 자신의 선호를 드러내 필요한 것을 얻으라는 조언이다.
그 자신은 이미 이를 실천하고 있다. 2006년부터 예정된 모든 강의 일정과 만날 사람, 예약 항공권 내역을 개인 웹사이트에 공개하고 있다. 공유해서 얻을 수 있는 가치가 위험보다 크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공항에 마중 나온 사람과 식사하며 멋진 대화를 나누기도 했고 출국장으로 가는 길에 태워주겠다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 와이겐드는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녹음하고 도처에서 카메라가 나를 찍는 시대에 ‘나는 아닐 수 있다’는 건 순진한 착각”이라며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그렇게 남은 기록으로 무엇을 하는가’이다”라고 말했다.
그가 몸담았던 아마존은 데이터 활용에 능한 기업이었다. 그는 매주 월요일 오전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와 만나 바우처 발행, 추천상품 제안 방식 등 아마존에서 할 수 있는 실험들을 논의했다. 와이겐드 대표는 “데이터 전략을 세워놓고 질문을 던져 그에 대한 답을 빠르게 찾을 수 있는 능력이 아마존의 힘”이라고 했다.많은 기업이 빠지는 함정은 ‘방향’은 알지만 ‘실행’을 잘못하는 점이라고 했다. 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기업이 많다고 와이겐드는 지적한다. 알리바바, 골드만삭스, 베스트바이 등 다양한 기업에 조언하고 있는 그는 “기업의 책무는 가설을 세우고 실험 조건을 만들어 고객의 선호도를 파악하는 것”이라며 “고객 스스로가 선언하는 선호도가 아니라 고객의 움직임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선호도를 읽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독일 연방정부 디지털위원으로도 활동하는 와이겐드 대표는 정부도 기업과 마찬가지로 데이터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파악한 각국의 데이터 전략 목표는 다르다. 중국은 정부의 존속, 즉 체제 유지이고 미국은 기업이 중심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가야 할 길은 ‘사람을 위한 데이터’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사람들이 스스로 더 나은 결정을 하도록 힘을 실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을 기반으로 기업도 정부도 있는 것이니까요.”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