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심 담아 쏜 미움의 화살…가장 큰 상처 입는 자는 바로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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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클레스와 민주주의기원후 2세기 인도 사상가 파탄잘리는 인도의 찬란한 세계 유산인 ‘요가’를 체계화하면서 요가와 관련한 다양한 경전을 집대성해 《요가수트라》란 네 권의 책으로 편찬했다. 파탄잘리는 인간이 자신의 마음속에서 잡념을 제거하고 더 나은 자신이 되도록 수련하면서 네 가지 마음을 획득한다고 했다. 이는 후대 불교인들에게 ‘사무량심(四無量心)’, 즉 ‘셀 수 없고 표현할 수 없는 숭고한 마음 네 가지’로 전수됐다.
배철현의 그리스 비극읽기 (35) 시기(猜忌)
자립하는 인간의 모습
스스로의 능력·잠재적 힘 믿는 용기로 자신에게 없는 富·명예 연연하지 않고
주어진 운명을 가지고 나의 길을 갈 뿐
오디세우스 시기하는 아이아스
아킬레우스의 武具를 놓친 분풀이로 트로이 전쟁 리더들 죽이려 나서지만
미몽에 빠져 소·양떼 마구잡이로 살육
사무량심(四無量心)기원후 2세기 인도 사상가 파탄잘리는 인도의 찬란한 세계 유산인 ‘요가’를 체계화하면서 요가와 관련한 다양한 경전을 집대성해 《요가수트라》란 네 권의 책으로 편찬했다.
파탄잘리는 인간이 자신의 마음속에서 잡념을 제거하고 더 나은 자신을 수련하면서 네 가지 마음을 획득한다고 했다. 이는 후대 불교인들에게 ‘사무량심(四無量心)’, 즉 ‘셀 수 없고 표현할 수 없는 숭고한 마음 네 가지’로 전수됐다. 첫 번째는 ‘마이트리(maitri)’다. 산스크리트어 마이트리는 한자로는 ‘자(慈)’로 표현됐다. ‘자’는 흔히 사랑으로 번역된다. 사랑은 내가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느끼고 가하는 감정이나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의 처지를 생각하고, 상대방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미리 살펴 아는 마음이다. 더 나아가 상대방이 즐거워하는 것을 함께 즐거워하고 그것을 마련해주려는 애틋한 마음이다.
두 번째는 ‘카룬나(karuna)’다. 카룬나는 한자 ‘슬플 비(悲)’로 번역된다. 슬픔이란 이웃의 아픔을 공감하기 위해 서로 등을 대고 함께 울 수 있는 마음이며 그 이웃이 슬픈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미리 헤아리고 그 방안을 마련해주는 용기다.인간이 ‘자비(慈悲)’라는 가치를 자신의 생각과 말, 행동을 통해 실천하면, 이보다 더 심오한 단계의 마음으로 진입한다. 바로 ‘무디타(mudita)’다. 무디타는 한자로 ‘기쁠 희(喜)’로 번역된다. 기쁨이란 한마디로 친구의 출세를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이다. 우리는 친구의 불행을 함께 슬퍼하기는 쉬워도, 그(녀)의 행복을 함께 즐거워하기는 비교적 힘들다. 기쁨이란 이웃이 땅을 살 때 정말 기뻐하고 그곳에서 함께 우정을 쌓으려는 아량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힘든 상태가 바로 ‘우펙샤(upeksha)’다. 우펙샤는 한자로 ‘사(捨)’다. ‘버릴 사’로 알려진 이 단어의 기본 의미는 평정심이다. 평정심이란 깊은 묵상을 통해 자신에게 감동적인 인생의 임무를 찾아 흔들림 없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마음이다. 그런 마음을 지닌 사람은 자신에게 옳은 것에 진정성이 있다면 목숨을 바칠 정도로 간절해 어떤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외치면서 독배를 마셨고, 예수는 모든 인간에게 신적인 유전자(DNA)가 있다고 주장하며 “저들이 하는 일을 저들이 알지 못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십자가에서 처형당했다.
시기와 흉내19세기 미국의 사상가 랠프 월도 에머슨은 《자립》이라는 에세이에서 인간들이 쉽게 탐닉하는 값싼 감정들을 경고한다. 교육은 자신과 상관없는 사실이나 숫자를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문법이 되는 자신만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발견하고, 그것을 발휘하는 과정이다. 교육이란 자신이 모르는 세계를 자신의 머리로 수용하는 수동적인 훈련이 아니라, 자신의 심연에 존재하는 ‘자신’이라는 원석(原石)을 발굴해 그것을 스스로 빛나도록 다듬는 수련이다. 에머슨은 인간이 일정한 교육을 받으면 “시기는 무식이며, 흉내는 자살행위”라는 것을 깨닫는다고 확신한다. 인생은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충고를 듣기엔 너무 짧다. 자신의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경청하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할 수 있다.
‘자립(自立)’이란 자신의 능력과 잠재적인 힘을 신뢰하는 용기다. 내가 지니지 않은 부나 명예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나는 나에게 할당된 운명을 가지고 나의 길을 용감하게 헤쳐나갈 뿐이다. 자립을 추구하는 자는 대중의 오해를 감당할 수밖에 없다. 에머슨은 말한다. “피타고라스는 당시 오해를 받았습니다. 소크라테스, 예수, 루터,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뉴턴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정결하고 지혜로운 영혼의 소유자들은 모두 그랬습니다. 위대하다는 것은 오해를 받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자비롭지 못한 인간은 남들에게 자비로울 수 없다. 자비를 수련하지 않은 자는 다른 사람의 성공을 기뻐할 수도 없고, 인정할 수도 없다. 그런 사람에게 엄습하는 감정이 바로 ‘시기’다.
아이아스는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에 버금가는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아킬레우스가 이 전쟁에서 사망하자, 아킬레우스에게 부여됐던 명예가 당연히 자신에게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경쟁(競爭)’을 통해 자신의 최선을 발휘하며, 그 경쟁에서 승리한 자는 그에 알맞은 공식적 인정인 명예를 얻는다고 믿었다. 전사한 아킬레우스의 무구는 명예의 가시적인 증거다. 아이아스는 이 명예가 자신이 아니라 경쟁자인 ‘말만 잘하는’ 오디세우스에게 가자, 미몽(迷夢)에 사로잡혀 무구와 관련된 자들을 살육하러 나선다.아이아스의 살육
아이아스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는 미몽에 빠져,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오디세우스에게 주기로 결정한 트로이 전쟁의 리더들인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 그리고 자신에게 와야 할 무구를 가로챈 오디세우스를 죽이러 나선다. 아이아스는 ‘장님’이 돼 이들이 아니라 소 떼와 양 떼를 마구잡이로 죽인다.
아테나 여신이 등장해 아이아스에게 묻는다. “아이아스여! 너는 칼을 아르고스인들의 군대에 푹 담갔느냐? 그대는 아트레우스의 아들들(메넬라오스와 아가멤논)에게 무기를 휘둘렀는가?”(95~97행) 아이아스는 자랑스럽게 “그렇다”고 말한다. 그들이 다시는 자신을 모욕하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아테나는 아이아스에게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차지한 경쟁자 오디세우스에 대해 묻는다. “라에르테스의 아들(오디세우스)은 어떻게 됐는가? 그는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가? 그는 너로부터 벗어나 죽음을 피했는가?”(98~100행) 아이아스는 오디세우스를 ‘약삭빠른 여우’로 표현하면서 대답한다. “오 여주인님, 그자는 내게 가장 반가운 포로입니다. 내가 거주지 안에 두었습니다. 나는 그자가 아직 죽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이아스의 말에서 오디세우스에 대한 시퍼런 시기가 감지된다. 아이아스는 오디세우스를 막사의 기둥에 묶어 놓고 고문하고 있다고 말한다. 아이아스의 결심은 단호하다. 아테나는 오디세우스를 고문하지 말라고 충고하지만 마이동풍이다. “아테나 여신이여! 다른 일이라면 당신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그자에게 어울리는 벌은 바로 고문입니다.” 아이아스는 실제로 오디세우스를 묶어 놓은 것이 아니라 양을 묶어 놓고 고문하고 있었다. 양과 오디세우스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미몽에 빠진 것이다.
시기
아테나는 한탄하며 오디세우스에게 말한다. “너는 아이아스보다 더 똑똑한 자를 본 적이 있느냐? 그보다 더 민첩하게 행동한 사람을 본 적이 있느냐?”(119~120행) 이 문장은 작가 소포클레스가 아이아스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를 보여준다. 아이아스는 ‘그리스인들의 성벽’이라는 별칭이 보여주듯이, 신체적인 거대함의 상징이다. 하지만 이 문장에서 아이아스는 통찰력을 소유한 자로 묘사된다. 소포클레스의 아이아스는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탁월함을 소유한 자다.
오디세우스도 이 사실에 동의한다. 그는 “내가 아는 한, 아이아스가 가장 똑똑한 자”라고 시인한다. 오디세우스는 사악한 미몽에 빠진 아이아스의 불행을 동정한다. 그는 아이아스의 불행을 자신의 불행으로 여기는 자비심을 지녔다. 그는 아이아스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으로 여긴다. 오디세우스는 인간의 삶이 실재가 없는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고백한다.
아이아스는 ‘시기’라는 병에 걸려 사리를 분별할 수 없다. ‘시기’에 해당하는 그리스 단어 ‘프소노스(phthonos)’는 ‘부러움, (질시를 통해 나오는) 악의, 원한’이란 의미를 지닌다. 아이아스는 시기로 장님이 됐다. 그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어두운 소용돌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테나는 오디세우스에게 경고한다. “그를 잘 보아라. 결코 신들에 대항해 오만한 말을 내뱉도록 허용하지 말라. 혹은 체력과 재력으로 누구를 능가한다고 해서 우쭐하지 말라. 무릇 인간이란 하루아침에 일어설 수도 있고 하루아침에 넘어질 수도 있다. 신들은 신중한 자들을 좋아하고 그 경계를 넘어서는 자들을 미워한다.”(129~133행) 시기라는 미움의 화살은 자신에게 돌아온다. 시기하는 순간, 가장 해를 입는 당사자는 바로 자신이다.
배철현 <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