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치욕의 날…판사들 "참담한 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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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연 법원행정처장 취임식사법 사상 최초로 전직 대법원장이 검찰에 소환된 11일 법원은 하루 종일 침통한 분위기였다.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곳곳에 설치된 텔레비전에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이 생중계됐다. 이를 지켜본 후배 판사들 사이에선 자조 섞인 목소리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사법 위기, 공동체 존립 위협"
법관들은 대체로 ‘참담하다’는 반응이다. 사법부의 전 수장이 검찰에 소환되는 모습은 사법부 전체 신뢰에 치명타란 의견이다. 서울의 한 법원장은 “오늘 사법부는 사망 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며 “법원의 상징과 같은 전직 대법원장이 검찰에 피의자로 출석하는 모습이 전국에 생중계됐다. 이제 법원과 법원이 내리는 판결을 누가 100% 신뢰할 수 있겠느냐”고 우려했다.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나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소환 때보다 훨씬 더 치욕스럽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젊은 배석판사들 사이에선 ‘밖에 나가 판사라고 말하기도 부끄럽다’는 자조 섞인 농담도 돈다고 한다.검찰 포토라인이 아니라 대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강행한 양 전 대법원장을 두고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춘천지방법원에서 근무하는 류영재 판사는 본인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올린 글에서 “자신의 재판을 하게 될 대법원에서 성명 발표를 하면 ‘친정이 하는 재판’이란 이미지가 생겨 재판하는 입장에서 부담이 커진다”며 “(양 전 대법원장에게) 법원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부여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한편 이날 대법원청사 16층에서 취임식을 연 조재연 신임 법원행정처장은 취임사를 통해 “사법부의 위기는 단지 사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며 “재판에 승복하지 않고 사법제도를 불신하는 풍조가 만연하면 사회적 갈등을 폭력이나 악다구니로 해결하려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