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조사 年 600여건…통폐합·정비는 시늉만

규제 논란에 작년 90건 '반짝 정비'

선진국선 절차·범위 엄격히 규정
자의적 조사·자료 임의제출 금지
불필요한 조사를 줄여야 한다는 민간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행정조사는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2014년 행정조사는 542건에 달했고, 이후 증가세를 보이다 2017년부터 600건을 넘어섰다.

행정조사기본법(제4조)은 불필요한 행정조사를 막기 위해 정부가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유사·동일 사안에 대해 공동조사 등을 실시함으로써 중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국무총리실이 각 부처의 행정조사를 줄이기 위해 매년 실태조사 및 법령을 재정비하고 있지만 말뿐이다.지난해를 제외하고 행정조사 정비 실적은 매년 양산되는 조사의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정권 교체기였던 2017년에는 13건(9개 부처) 정도만 ‘찔끔’ 정비하는 데 그쳤다. 국회 정무위원회 관계자는 “정권의 영향력이 약해졌을 때는 정부도 행정조사 축소를 시늉만 하는 데 그쳤다”며 “행정부가 조사 권력을 손에서 놓고 싶어하지 않는 본성이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에는 정부 출범 후 규제개혁 의지를 강조하는 등 ‘군기’를 잡으면서 법령 정비 실적이 지난해 90건으로 수직 상승했다. 집권세력 의지로 행정조사 체계를 충분히 정비할 수 있다는 방증이다.

해외에서는 철저한 ‘법률주의’를 채택해 행정조사 절차와 범위를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한국법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행정절차법’을 통해 자의적인 행정조사 및 자료의 임의제출을 금지하는 등 법률주의를 강조하고 있다.일본은 과거 한국과 마찬가지로 권력행위 수단으로 행정조사가 인식돼왔지만 점차 출입자 검사, 문서 제출 명령 등을 법 절차로 규정하는 등 ‘비권력적 행위’로 탈바꿈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법제연은 “종래 행정조사는 행정부처에 의한 자의적, 강압적 수사로 행해지는 권력행위나 마찬가지였다”며 “조사해야 하는 사유와 내용을 구체적으로 법령에 세세하게 규정하고 예외는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제도가 정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