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시장주도 혁신'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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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어닝 쇼크'…저성장 늪 현실화 우려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8.7%, 전 분기 대비 38.5% 감소한 10조8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의 수출액, 특히 반도체 수출액은 한국 총 수출액의 20% 이상이고, 영업이익도 전체 상장사 영업이익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등 삼성전자는 한국 경제에서 상당히 큰 부분을 점유하고 있다. 반도체 경기가 악화되고 삼성전자의 반도체 수출이 부진할 경우 이를 대체할 다른 기업이나 산업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한국 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우려되는 까닭이다.
내수보다 세계시장 공략…미래형 인재도 육성
정부는 시장기능 존중하고 혁신 환경 닦아야
김소영 < 서울대 교수·경제학 >
한국 경제 지표가 악화되고 저성장 국면이 가시화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어닝쇼크’는 이런 우려가 조만간 현실화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삼성전자와 과거 한국 경제가 고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던 요인을 짚어보면서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위해 필요한 것을 생각할 시점이다.미래에 대한 정확한 비전을 갖고 선도적으로 반도체산업에 과감한 투자를 한 것이 현재 삼성전자가 반도체산업을 이끈 중요한 요인이다. 과거 한국의 고성장기에도 인프라, 조선, 자동차, 철강 등 미래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국 경제의 도약을 위해서도 미래에 대한 투자와 비전이 필요하다.
다만 개발도상국 시절에는 많은 기회와 투자처가 존재해 물적 투자를 하면 대부분 성장으로 직결됐으나 이미 많은 발전을 이룬 한국의 현 상황에서는 적재적소에 효율적인 투자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까지는 모방과 학습으로 선진 경제를 추격하며 성장하는 것이 가능했는데, 앞으로는 보다 창조적인 생각과 혁신이 필요하다. 과거에는 국가 주도의 대규모 경제 계획으로 발전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는 정부가 자세히 계획하고 신기술을 지정하며 혁신을 평가하는 방식의 정부 주도 혁신보다 정부는 한 발 물러서서 혁신을 위한 환경과 플랫폼을 만들어 주고, 시장이 혁신을 평가·선도하는 시장 주도 혁신이 필요하다.
삼성전자에 한국의 많은 대표 인재들이 집결해 있다는 것도 삼성전자가 업계를 선도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다. 마찬가지로 한국 경제가 과거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도 한국이 전통적으로 교육을 중요시해왔고, 꾸준히 인적 자본을 축적해왔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까지 한국 교육은 주로 일상적인 일을 능숙하게 할 수 있는 평균적인 인재를 만들어 냈지만, 향후 추가적으로 필요한 것은 보다 창조적이고 혁신을 선도해 갈 수 있는 세계적인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교육은 오히려 반복학습, 선행학습, 평준화에 매몰돼 있고, 뛰어난 인재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양성하는 것에는 소홀하다.삼성전자와 한국 경제가 글로벌 시장을 중요시했다는 면도 간과할 수 없다. 최근 미·중 무역전쟁 등 보호무역주의가 확대되고, 글로벌 금융위기 등 해외 사건이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발생함에 따라 수출이나 글로벌 시장보다는 내수 활성화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위해 글로벌 시장 진출은 필수다. 글로벌화가 되면 세계 경제가 어려울 때 우리도 어려워질 수 있는 반면 우리가 여력이 부족하더라도 세계 경제가 좋으면 한국 경제도 좋아질 수 있다. 특히 특정 국가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전반적인 글로벌화를 이룬다면 한국 경제는 안정적인 성장이 가능하다.
미국, 중국 등의 대규모 경제는 내수에 의존해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성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과 같은 소규모 경제는 국가 경제를 이끌 만한 산업들은 대부분 규모의 경제가 적용되므로 내수만으로는 발전하기 어렵고 글로벌 시장이 필요하다. 글로벌 시장과 수요의 존재는 소규모 경제가 기술과 공급 여력을 발전시켜 고성장을 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삼성전자가 1970년대 반도체산업에 투자를 시작해서 산업을 선도하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향후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위해서도 많은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다. 10년 후 재도약을 위해 지금 시작해도 빠르지 않다. 10년 후 한국 경제가 초(超)저성장 늪에 빠진 것을 인지할 때는 이미 늦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