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킷벗은 문대통령-기업인 격의없는 소통…"질문할 분 손드세요"

직접 사회 본 박용만 "삶의 터전 만들고 세금 많이 내 나라에 보태는 게 애국"
문대통령 양쪽엔 중견기업 대표, 이재용·정의선은 대통령 뒷줄에
노영민, 사전환담서 이재용과 악수하며 "많이 도와주세요"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대기업 총수와 중견기업인 등 130여 명을 청와대 영빈관으로 초청해 이뤄진 간담회는 격식을 허문 채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기업활동의 애로사항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최대한 편한 분위기를 연출했고, 기업인들은 적극적으로 토론에 임하며 규제개혁 필요성 등을 건의했다.

간담회가 열린 영빈관 정면에는 '기업이 커가는 나라, 함께 잘사는 대한민국-2019 기업인과의 대화'라고 적힌 대형 배경 그림이 걸렸고, 행사장 한가운데 참석한 기업의 CI(기업 이미지) 팻말이 꽂힌 세계지도 구조물이 놓였다.

행사 시작 시간인 오후 2시를 30분 남짓 남기고 도착한 참석자들은 영빈관 밖에 마련된 다과를 나누며 인사했다.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 기업인들은 차례로 줄을 서서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악수했다.

노 실장은 이 부회장에게 "반갑습니다.

많이 도와주세요"라며 인사를 건넸다.이날 행사장 좌석은 세계지도 구조물을 바라보고 세 구역으로 나눠 둥글게 배치됐다.

격의 없이 소통하겠다는 취지에서 '타운홀 미팅' 형식을 채택한 데 따른 자리 배치였다.

문 대통령은 가운데 구역 맨 앞줄 중간에 자리했다.
문 대통령의 왼편으로는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여민수 카카오 대표이사가, 오른편으로는 김재희 이화다이아몬드공업 사장, 권세창 한미약품 대표이사, 방준혁 넷마블 의장, 강호갑 신영 회장이 자리했다.

고민정 부대변인은 "대통령 좌우에 앉은 두 분은 젊은 기업인으로, 김택진 대표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게임·IT업계 대표주자로서, 김재희 사장은 중견 여성 기업가로서 배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대통령 바로 뒤에는 신유동 휴비스 대표이사가 앉았고 신 대표의 왼쪽으로 이재용 부회장, 최태원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허창수 GS 회장, 곽재선 KG그룹 회장이, 신 대표의 오른쪽으로 정의선 부회장, 구광모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최정우 포스코 회장, 변대규 휴맥스 의장이 앉았다.

문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대기업과 중견기업이 한국경제의 큰 흐름과 전환을 이끌어 왔다"며 "정부가 여러분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고 현장의 어려움을 신속하게 해소하는 데 힘쓰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에 이어 마이크 앞에 선 박용만 상의 회장은 "국민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드리는 경우도 있겠지만 앞날을 향해 뛰어가는 기업을 봐달라"며 "외형을 키워 임직원과 삶의 터전을 만들고 세금 많이 내 나라 살림에 보탬이 되는 게 저희가 아는 애국의 방식"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청와대와 정부, 여당 참석자들을 향해 "불편한 이야기가 있더라도 경청해주시길 부탁한다"며 "문 대통령은 제가 만나 뵌 그 어느 정상보다 경청을 잘해주시는 분"이라고 강조했다.

인사말을 마친 박 회장은 곧바로 '진행자'로 변신했다.

간담회 토론의 사회를 맡아서다.

"미팅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상의를 탈의하고 진행하면 어떤지 건의 드려본다"는 말에 문 대통령이 "좋습니다"라고 하자 참석자들은 일제히 웃으면서 일어나 재킷을 벗었다.

토론은 박 회장으로부터 질문권을 얻은 기업인이 2분 이내로 질문을 하면 정부 관계자가 답변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첫 번째 주제는 '혁신성장'이었다.

박 회장이 "질문해주실 분은 손을 들어주시기 부탁합니다"라고 말하자 가장 먼저 손을 든 황창규 KT 회장이 질문권을 얻었다.

황 회장은 지난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가 발생했는데도 사상자가 전혀 없었던 사례를 언급하고 "이는 빅데이터를 통해 환자가 접촉한 모든 사람을 파악해 조기에 격리했기 때문"이라며 개인정보 보호 규제를 완화해 달라고 건의했다.

답변에 나선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규제샌드박스법이 모레 발효되면 그 부분이 가속화할 것"이라며 "기업과 정부, 이해관계가 걸린 당사자들이 먹거리 산업 측면에서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말했다.

경남 고성에서 중소 조선소를 운영하는 송무석 삼강 M&T 대표이사는 "상생협력 모범사례를 소개하겠다"며 경상남도의 노력으로 대만 해상풍력발전 프로젝트를 수주했다고 전했다.

송 대표의 발언이 끝나자 문 대통령은 "고맙다"며 참석자들에게 박수를 청하기도 했다.

다음으로 마이크를 잡은 이종태 퍼시스 회장은 "기업이 규제를 왜 풀어야 하는지 호소하는 현재의 방식을 공무원이 규제를 왜 유지해야 하는지 입증하게 하고 이에 실패하면 폐지하게 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개별 기업에 절벽같이 다가오는 규제는 정부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서 해결해 나가겠다"면서 "규제혁신이 경제활력을 찾고 혁신성장을 이루는 데 가장 핵심적인 영역"이라고 언급했다.
홍 부총리는 "말씀하신 부분을 국정 전반에 걸쳐 모두 할 수는 없지만, 공직자가 (규제 필요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과감하게 없애보는 시도를 해보겠다"고 부연했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규제혁신을 위해 법률 개정이 필요한 부분은 절차에 시간이 걸리겠지만 행정명령으로 이뤄지는 규제는 정부가 선도적으로 노력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며 "그 부분에 집중적으로 노력해주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이어 마이크를 잡은 최태원 회장은 "혁신성장의 기본전제는 실패에 대한 용납"이라며 "규제완화의 기본적인 배경에 '실패를 해도 좋다'는 생각을 가져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또 "혁신성장이 산업화하기 위해서는 '실험에 얼마나 싸게 접근할 수 있는가' 하는 코스트(비용) 문제가 중요하다"며 "코스트가 낮아질 수 있는 환경을 정부와 사회와 기업이 함께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혁신성장의 또 다른 대상인 사회적 경제 분야는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포텐셜(잠재력)이 있는 곳"이라며 "정부와 기업 모두가 힘을 합해 여기에 힘을 쏟으면 사회적 경제가 또 다른 혁신성장 부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2년 전에도 와서 말씀드린 적 있지만 사회적 기업과 관련한 법들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며 "어떻게 하실 것인지를 저희가 알고 가면 도움이 되겠다"고 덧붙였다.

오후 3시 40분께까지 예정됐던 간담회는 모두 17명의 기업인으로부터 질문이 나와 오후 4시까지 이어졌다.

참석자들에게는 추후 대한상의를 거쳐 대통령 손목시계가 기념품으로 지급될 예정이라고 청와대는 전했다.
15분여간 기념촬영을 마친 후 문 대통령은 박용만 상의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 정의선 수석부회장, 최태원 회장, 구광모 회장, 현정은 회장, 중견기업연합회장이기도 한 강호갑 신영 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방준혁 의장과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문 대통령과 기업인들은 영빈관에서 본관과 소정원을 거쳐 녹지원까지 25분가량을 걷고 산책을 마쳤다.박용만 회장은 승용차를 타고 떠났고, 다른 참석자들은 청와대에 올 때와 마찬가지로 버스를 이용해 청와대를 빠져나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