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새해는 폭로사회에서 포용사회로

사회 곳곳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폭로'
무조건 덮어 두고 침묵하도록 억압 말고
스스로 반성하는 포용적 사회가 됐으면

곽금주 < 서울대 교수·심리학 >
청와대 특감반원이었던 김태우 수사관의 폭로에 이어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폭로로 인한 혼란 속에서 새해가 시작됐다. 그리고 심석희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의 성폭력 피해 폭로로 체육계의 ‘미투’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작년에 고조됐던 ‘미투 운동’은 우리 사회를 ‘폭로사회’로 바꿔놓은 기폭제가 됐다. 청소년부터 전문직 여성까지 나이와 직종에 관계없이,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이 피해 관련 폭로와 고발이 잇따랐다. 더 이상은 참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상사나 기업 오너의 갑질과 비리 관련 폭로는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사회 곳곳에서 부정과 부패 그리고 개인적 부당함과 조직 잘못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이런 폭로는 사소한 욕심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개인의 가치관 차이로 인한 것이기도 하고, 상황 판단이 부정확해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잘못된 폭로로 인해 가해자로 지목돼 억울한 비난과 질책을 받는 경우도 있다. 폭로가 조직을 와해시키는 어리석은 행위라는 비난으로 인해 폭로자 자신이 피해를 입기도 한다.

그러나 이름을 당당히 밝히고 개인적인 수치심이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폭로하는 사람들의 용기를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들의 폭로 내용이 사실이 아니고 거짓이라는 무조건적인 비난은 일단 유보해야 한다. 폭로를 하기 전에 당사자는 여러 면에서 두려움을 갖게 된다. 자신이 부정적인 사람으로 낙인찍힐 것이라는 두려움, 보복이나 처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관련 없는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런 두려움이 극복되지 않는다면 폭로보다는 침묵을 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두려움을 넘어서 폭로까지 하게 되는 것은 스스로에게 주어지는 심리적인 이득이나 혜택 때문이다.

폭로란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한 행동으로 정의를 위한 것이란 생각에서 비롯된다. 침묵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자신은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자신감이나 만족감을 갖는다. 그간 비밀로 묻어야 했던 스트레스나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기도 하다. 혼자 침묵하며 지켜내는 것에서 비롯된 부담감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자신을 괴롭혔던 상대나 조직으로부터 벗어날 수도 있다. 침묵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받을 수 있다는 죄책감에서도 벗어날 수 있기도 하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나 이를 공감하는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지지를 받기도 한다.물론 이런 심리적 이득을 따져보고 나서 폭로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비밀을 유지하는 것보다 드러내고 알리는 것에 더 적응해온 존재이기에 비밀을 지켜내지 못하는 거다. 폭로 행위는 동조심리나 모방심리를 자극하는 것이기에 지속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인간이 지닌 호기심 욕구를 자극하면서 더욱더 강한 폭로를 부추기기 때문이기도 하다. 폭로에 의해 누군가의 비밀이나 실수를 들여다보는 쾌감을 즐기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 이슈가 되는 많은 소문이 난무하게 된다. 폭로 내용이 진실인지 아닌지, 폭로까지 할 문제인지, 그 판단이 틀렸는지, 폭로하는 저의는 무엇인지 개의치 않으며 정치적 음모설까지 난무하게 된다. 이로 인해 때로는 사회적으로 피로감이 커지게 된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는 폭로에 지나치게 서투르다. 폭로에 대한 무조건적인 방어 본능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조직이 그렇게 완벽할 수 있겠는가. 조직을 비판하고 지적하는 구성원은 있게 마련이다. 설사 그 개인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폭로일지라도 그런 판단을 하기까지, 내게 그리고 우리 조직에 문제는 없었는지 반성해야 한다. 그래서 이를 계기로 좀 더 변화하고 발전해야 한다.

2019년에도 우리 사회의 키워드는 ‘폭로’라는 생각이 든다. ‘분노사회’ ‘혐오사회’에 이어 ‘폭로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불합리와 부조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긍정적인 폭로 말이다. 의문스러운 것을 지적하고, 이에 답하고 밝히는 투명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폭로다. 덮어두고 침묵하게 하는 억압이 아니라, 폭로를 수용하고 이해하는 좀 더 포용적인 사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