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사법부, 국회의원 한마디에 '일사천리' 재판개입

민원 접수한 판사는 '상고법원 TF', 임종헌은 서영교 '마크맨'
법원장 "못 막아줘서 미안하다"면서도 재판부에 청탁 전달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국회의원의 '재판 청탁'을 하루 만에 담당 판사에게 전달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구체적 정황이 드러났다.검찰은 당시 법원행정처가 국회 법제사법위원으로 있던 의원 등에게 상고법원 찬성 입장을 얻어내기 위해 재판에 개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16일 임종헌(60·구속기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공소장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자신의 의원실로 불러들인 김모 부장판사는 국회에 상주하며 의원들 동향을 파악해 법원행정처에 보고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그는 '상고법원 입법추진 TF(태스크포스) 대응전략팀' 소속으로 '의원별 맞춤형 설득 전략' 개발 업무도 했다.2014년 12월 발의된 상고법원 입법안은 국회 법사위에서 좀처럼 논의가 진척되지 않았다.

서 의원은 법안 발의에 서명했지만 통과에는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일선 법원에 청탁을 전달한 임 전 차장은 마침 서 의원 개별 접촉·설득을 맡은 '마크맨'이었다.임 전 차장은 이메일을 통해 재판 민원을 전달받고는 서 의원의 마음을 돌릴 기회로 여긴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이 "서 의원을 설득하고 향후 사법부가 추진하는 주요 정책, 법안 등에 대해 도움을 받기 위해" 재판에 개입했다고 공소장에 적었다.
임 전 차장이 "지인 아들이 벌금형을 선고받게 해달라"는 내용의 청탁을 접수한 때는 선고 사흘 전인 2015년 5월18일이다.피고인 이모씨의 사건 진행 내역을 검색한 결과 선고가 임박했음을 확인한 임 전 차장은 이튿날 오전 문용선 당시 서울북부지법원장(현 서울고법 부장판사)에게 전화를 거는 한편 법원행정처 기획총괄심의관을 통해서도 청탁 내용을 전달하는 꼼꼼함을 보였다.

문 전 법원장은 상고법원 설치에 전력투구하던 법원행정처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다.

그는 이씨 사건의 심리를 맡은 박모 판사를 자신의 방으로 불러 "내가 이런 건 막아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다"면서도 민원을 그대로 전달했다.

서영교 의원의 방에서 이뤄진 청탁이 법원행정처를 거쳐 해당 재판장에게 전달되는 데 단 하루 걸린 셈이다.

법원행정처가 알린 대로 그날 오후 이씨의 변론재개 신청서가 재판부에 접수됐다.

기록을 검토한 박 판사는 "변론을 재개할 사유가 없어 예정된 기일에 선고를 하겠다"고 법원장에게 다시 보고했다.

이씨는 원하던 대로 죄명을 강제추행미수에서 공연음란으로 바꾸지는 못했다.

그러나 벌금 500만원의 비교적 가벼운 형을 선고받았고 신상정보 공개·고지명령도 피했다.

벌금형을 받아 구속을 피하려던 애초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법원행정처는 국회 법사위 소속 의원의 청탁이라면 전직 의원 사건이라도 재판개입을 마다하지 않았다.

임 전 차장은 2016년 8월 당시 법사위 소속 한 의원으로부터 "노철래 전 의원이 구속기소됐는데 선처를 받게 해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노 전 의원은 그해 4월 20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수원지법 성남지원에 구속기소돼 재판 중이었다.

임 전 차장은 이후 노 전 의원 사건을 청탁한 현역 의원으로부터 문건 하나를 전달받았다.

노 전 의원이 비슷한 범행으로 불구속 재판을 받고 있던 다른 의원에 비해 수수 금액이 적고 죄질이 가볍다는 내용의 문건이었다.

임 전 차장은 이 문건을 성남지원장에게 이메일로 전달했다.

재판부에 연락해 사정을 전달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부담을 드려서 죄송합니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청탁과 달리 노 전 의원은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임 전 차장은 법원행정처 실장회의에서 양형이 적정한지 등을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애초 민원을 한 현역 의원에게 줄 설명자료를 만들기 위해서다.

법원행정처가 정치인 형사재판을 따로 검토한 사실을 숨기려고 보고서 양식도 바꾸도록 했다.법원행정처는 문건에서 "최근 선고된 유사 사례에서 대부분 실형이 선고됐다"거나 "본건은 실형 사안의 주요 특징을 갖추고 있다", "최근 정치자금법 위반 행위에 대해 엄벌에 처하고 있는 양형의 동향에 따른 것으로 볼 수도 있다"면서 청탁을 들어주지 못한 데 대해 '해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