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온라인 파워…뉴욕 맨해튼 5번가 상점도 비어간다

갭·헨리 벤들 등 글로벌 의류 브랜드 곧 폐점
작년 4월 문닫은 랄프로렌 매장 여전히 '텅텅'
104년 된 백화점 로드앤드테일러도 운영 중단
맨해튼 전체 매장 중 20%가 임차인 못찾아

전자상거래 확대로 매출 감소가 가장 큰 원인
1㎡당 年 3622만원…비싼 임대료도 한몫
뉴욕시장 "상가 빈 빌딩주인에 세금 매기겠다"
열 달째 비어 있는 뉴욕 맨해튼 5번가의 폴로랄프로렌 매장.
삭스피프스애비뉴부터 버그도프굿맨, 구찌, 티파니, 루이비통 등 각종 명품 브랜드 매장과 최고급 백화점이 밀집한 미국 뉴욕 맨해튼의 명품 쇼핑거리 5번가(Fifth Avenue)가 비어 가고 있다. 10년째 이어진 미국의 경기 확장 속에 임대료는 천정부지로 치솟았지만, 전자상거래 확산 등으로 상점 매출은 감소하고 있는 탓이다. 이른바 ‘아마존 구축 효과’가 세계 최고의 명품 거리마저 불황에 몰아넣고 있다.
오는 20일 폐점하는 의류 브랜드 갭의 맨해튼 5번가 매장.
브로드웨이엔 빈 상점만 188개의류 브랜드 갭(GAP)은 오는 20일 맨해튼 5번가 54스트리트에 있는 3층 규모 플래그십 스토어를 폐점한다. 점포는 현재 ‘마지막 세일(Everything must go)’을 알리는 문구로 뒤덮여 있다. 인근 55스트리트에 있던 폴로랄프로렌의 플래그십 숍은 작년 4월 폐쇄된 뒤 아직도 을씨년스럽게 비어 있다. 그 맞은편 뉴욕의 명품 브랜드인 헨리 벤들 매장도 이달 폐점한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베르사체도 5번가 매장 폐쇄를 검토 중이며, 캘빈클라인은 바로 옆 매디슨애비뉴 매장을 올봄에 닫는다고 지난 10일 발표했다. 백화점 로드앤드테일러는 작년 12월에 104년 된 5번가 39스트리트에 있던 매장 운영을 중단했다.

센트럴파크부터 이어지는 맨해튼 5번가 49~60스트리트 지역은 세계에서 임대료가 가장 비싼 곳이다. 부동산서비스업체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에 따르면 이 지역의 상가 임대료는 2017년 기준 제곱피트(0.092㎡)당 연 3000달러에 달했다. 1㎡로 따지면 연간 3622만원인 셈이다. 영국 런던의 뉴본드스트리트(1719달러), 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1407달러), 미국 베벌리힐스의 로데오거리(875달러)보다 훨씬 높다. 이런 금싸라기 점포가 비어 가고 있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9월 부동산 중개업체인 더글러스엘리먼 설문조사를 인용해 맨해튼 소매 공간의 약 20%가 비어 있다고 보도했다. 2016년 같은 설문조사에서 나왔던 7%보다 급증했다. 맨해튼구청이 지난해 벌인 조사에서는 20㎞ 길이의 맨해튼 브로드웨이에서 모두 188개의 빈 상점이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전자상거래 발달로 오프라인 매장의 매출이 감소하고 있는 것을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한다. 지난해에만 토이저러스, 짐보리, 루21 등 20여 개 소매업체가 파산했으며 백화점 시어스와 메이시스, JC페니 등도 파산 위기를 맞고 있다. 고급 백화점인 니만마커스, 노드스트롬도 회사 매각과 구조조정 등을 추진 중이다.여기에 맨해튼의 높은 임대료는 소매업체에 큰 부담이 된다. 폴로랄프로렌은 지난해 4월 5번가 점포 폐쇄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으로 50개 매장을 없애 비용을 연간 1억4000만달러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대신 전자상거래를 담당하는 디지털 인력은 늘리겠다고 설명했다. 작년 12월 5번가 점포 폐쇄 계획을 공개한 갭은 전자상거래뿐 아니라 자라 등 제조·직매형 의류(SPA) 브랜드에 밀려 작년 3분기 매출이 7% 감소했다. 아트 펙 갭 최고경영자(CEO)는 “수익성 없는 매장을 폐쇄해 1억달러 이상을 아끼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비어가는 공간엔 아마존이 파고들어

일부에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자택이 있는 5번가의 트럼프타워가 상권을 해친다고 지적한다. 경찰이 트럼프타워 경비를 위해 56스트리트를 아예 틀어막아 통행이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뉴욕포스트는 트럼프타워 바로 옆 빌딩에 있는 티파니 매장의 지난해 매출이 11% 감소했다고 보도했다.이처럼 뉴욕시 곳곳의 상가가 비어 가자 시는 골치를 썩이고 있다. 상가가 비어 있으면 주변이 슬럼화될 우려가 있어서다.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은 지난주 시의회 연설에서 “상가가 비는 건 빌딩주들이 임대료를 높이려 하기 때문”이라며 “상가가 빈 빌딩 주인에게 벌금 형태의 세금을 매기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몇 년 동안 수많은 빌딩에서 가장 목 좋은 점포들이 비어 있는데, 그건 인근 지역의 황폐화를 부른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비어 가는 공간엔 아마존이 파고들고 있다. 아마존은 2016년 홀푸드를 인수해 뉴욕시에 있는 13개 매장을 확보했다. 또 아마존북스 매장 12개를 개장했고, 3개를 더 열 계획이다. 작년 9월에는 ‘아마존 4스타’라는 새로운 콘셉트의 매장도 열었다. 아마존 쇼핑몰에서 평점 4점 이상을 받은 상품만 파는 곳이다. 무인점포인 아마존고를 짓는다는 소문도 무성하다. 여기에 작년 말엔 뉴욕 롱아일랜드시티 지역에 2만5000명이 일하게 될 제2 본사를 건립하겠다고 발표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