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효율적인 사내 직무전환

황태인 < 토브넷 회장 thwang52@naver.com >
어릴 때 부모님은 당장의 예쁨보다 클 것을 대비해 체구에 비해 큰 사이즈의 옷을 사서 입히곤 했다. 그 옷은 시간이 훨씬 지난 뒤 체구가 어느 정도 컸을 때 비로소 제 주인을 찾은 듯 본디 모양새를 나타냈다. 부모님들이 자녀가 클 것을 확신해 큰 옷을 사서 입힌 것처럼 기업도 뽑아 놓은 인재가 앞으로 성장할 것을 확신해 그들에게 맞지 않는 직무를 넉넉하게 입히고 있다면 끔찍한 상상일까?

필자는 박사학위가 끝나갈 무렵인 1980년대 중반 미국 뉴저지주 위파니에 있는 AT&T 벨연구소 컴퓨팅시스템본부로 출근했다. 당시 벨연구소네트워크(BLN) 가용성과 신뢰성의 문제가 심각했다. 벨연구소에선 필자가 낸 논문을 적용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렇게 2년 정도 모델링하고 시스템을 개선해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이후 개인이동통신서비스(PCS)를 연구개발하기 위해 직장을 옮겨야겠다고 마음먹었다.벨연구소에는 사내 직무전환 프로그램(IJTP)이 잘 돼 있었다. 마침 위퍼니에 이동통신 사업본부가 있어 바로 IJTP에 응모했다. 당시 한국에선 이동통신사업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이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한국 전체를 어떤 시스템으로 운용할까 결정하는 입찰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AT&T 시스템이 낙찰됐다. 필자는 한국인이라는 점과 우수한 인재를 외부에 뺏기지 않겠다는 벨연구소의 인사정책이 더해져 이동통신사업본부로 옮기게 됐다.

한국이동통신이 설치한 AT&T 시스템은 초기엔 원활하게 운영되지 못했다. 서울만 하더라도 산이 많아 다른 국가에서 운용되는 시스템과 같은 효율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기지국 설계와 교환국 용량 분석을 위한 한국 출장이 빈번해졌고, 한국 프로젝트를 전담하게 됐다. 한국에서 한 번에 15~20명씩 벨연구소에 장기교육 출장을 오게 되면 필자가 교육도 하고 미국 운용회사를 함께 방문해 실무 교육을 받도록 했다. 이를 계기로 1992년 제2이동통신사업을 추진했던 쌍용그룹 이동통신사업본부에 합류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회사경영의 성패는 인재에 달려 있다. 그래서 많은 기업이 인재를 뽑을 때 심혈을 기울인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인재에게 ‘언제 어떤 옷을 입혀 키워낼 것이냐’다. 필자도 직무가 바뀔 때마다 스타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한국 기업 최고경영자(CEO)로 일할 때 좋은 인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사내 직무전환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했다. 이제는 인재가 아니라 ‘인재 스타일링’이 답이다. 당신이 CEO라면 인재를 변화시킬 준비를, 당신이 인재라면 변화할 준비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