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장시간 조서 열람이 특혜 논란되는 사회

이인혁 지식사회부 기자 twopeople@hankyung.com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장시간 조서를 열람해 ‘특혜’ 논란에 휩싸였다. 지금까지 총 27시간 검찰 조사를 받았는데, 조서검토는 30시간이 넘을 전망이다. 일각에선 양 전 대법원장이 조서 전체를 외우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박근혜·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도 각각 조사 시간의 절반 수준인 7시간과 6시간 만에 조서열람을 마쳤고, 통상 일반인 피의자는 한두 시간 정도 조서열람하는 것과 비교할 때 과도한 특혜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피의자가 자신의 조서를 꼼꼼히 검토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조서는 재판에서 증거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되면 사건 쟁점에 대해 검사와 묻고 답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런 신문의 결과를 기록한 것이 조서며, 피의자가 검찰이 작성한 조서의 문구와 내용을 확인하고 수정 요청 등을 하는 절차가 조서열람이다. 조서는 피의자에게 불리하게 작성되는 경우가 많다. 검사나 수사관이 진술을 자신이 이해한 대로 요약 정리해 조서를 작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성자 의도에 따라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검찰은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아예 조서에 넣지 않기도 한다는 지적이 있다.그런데도 조서열람 시간을 놓고 특혜 논란이 나오는 것은 그동안 피의자들이 조서열람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서열람 때 검사가 앞에서 빤히 쳐다보고 있으며, 일일이 문구 하나하나 고치다간 검사에게 밉보일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비용 문제 때문에 조서열람에 변호인의 도움을 받기도 쉽지 않다.

양 전 대법원장의 장기간 조서열람이 이례적이긴 하지만 법조계에선 “마냥 특혜로 볼 게 아니라 이번을 계기로 누구나 조서열람을 자유롭게 하는 관행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번 기회에 조서제도 자체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세계적으로 재판에서 조서를 직접 증거로 인정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한 변호사는 “공판중심주의 측면에서도 수사 과정에서 작성된 조서의 증거 능력을 제한하고 재판에 출석한 피고인을 상대로 직접 문답하는 게 옳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