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끊기는 올해가 고비인데, 수년 걸리는 원전해체로 전환하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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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재개' 호소한 창원商議 회장
대통령 앞에서 '소신 발언' 한철수 창원商議 회장
원전 해체시장 2023년 본격화
미래 준비할 시간 달라는 것을…
신한울 3·4호기 재개 공론화도 요청했지만 "정책변화 없다"
열린 자세로 듣겠다더니 '답정너'
부품사, 고가장비 헐값에 넘기고 창원 원전 실업자 늘어나는데
정부는 이 절박함 모르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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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철수 창원상공회의소 회장(사진)은 1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 내내 목청을 높였다. 그는 지난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기업인 간담회에 참석해 “신한울 3·4호기 공사 중지로 경남 창원의 원전 관련 업체들이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며 공사 재개와 공론화 추진을 요청했다. 창원은 국내 최대 원전업체인 두산중공업과 300여 개 협력업체가 있는 대표적인 원전 도시다. 한 회장은 이날 창원 산업계를 대표해 참석한 뒤 발언권을 얻어 업계 요구를 대통령에게 전달했다.하지만 문 대통령은 “(건설 중인) 추가 원전 5기가 더 준공되면 전력 예비율은 빠르게 늘어날 것”이라며 “에너지정책 전환의 흐름이 중단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회장의 간곡한 요청에도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는 불가하다고 사실상 선을 그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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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이 정부 의뢰를 받아 작성한 ‘원전산업 생태계 개선방안’ 보고서를 보면 국내 원전 해체시장이 본격 형성되는 건 2023년이다. 당장 올해가 고비인 원전 기자재업체들에는 너무 먼 얘기다. 정부가 또 다른 대안으로 제시하는 원전 수출 역시 지금 수주에 성공한다고 해도 일감은 3~4년 뒤에야 떨어진다. 이로 인해 생기는 ‘일감 절벽’은 원전산업의 핵심인 기자재·설계 업체들에 특히 타격이 크다. 국내 원전 기자재·설계 업체는 742개로 전체 원전기업의 52.7%에 이른다.
한 회장은 “업종 전환이라는 게 말이 쉽지 2~3년 준비해도 잘 될까 말까 한다”며 “실제 기업을 해 보면 업종 전환을 그리 쉽게 말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원전 기자재 산업은 전문성이 강해서 전환이 어려운 특수성이 있다”며 “이들 기업이 무너지면 한국 원전산업 생태계는 다시 복원하기 힘든 상태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한 회장은 원전산업의 붕괴가 벌써 가시화되고 있다고도 했다.
“창원 지역 원전업체들이 작년부터 직원을 대거 내보내 실업자가 양산되고 있습니다. 경영난을 감당하기 힘들어 대책도 없이 고가 장비를 팔아 치웠다는 기업도 많아요. 그런데 대통령은 원전 발전 비중이 30%가 넘어 다른 나라보다 높은 편이고 전력 예비율이 25% 정도여서 문제가 없다는 전력 수급 체계 얘기만 하더군요. 업계의 절박함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아 답답했습니다.”
한 회장은 “원전산업뿐 아니라 자동차, 조선, 중장비, 철강 등 주력 산업도 사정이 암울하다”며 “올해 창원 경기가 최악으로 치달을 것 같다”고 말했다.‘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주장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소신 발언’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했다. 그는 “송 의원이 원전업계의 현실과 어려움을 헤아리고 용기 있게 말해줘서 감명 깊었다”며 “정치권에서 객관적인 사실을 보고 소신 있게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