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등의 반란] 토종 위스키의 '화려한 부활'…7년 만에 매출 10배↑



부산에서 자동차 부품업체 대경T&G를 경영하던 박용수 회장(72)은 2010년 지인들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골든블루'라는 위스키를 처음 맛봤다. 36.5도짜리 골든블루가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판매되기 시작할 때였다. '맛있다'고 생각했다.보통의 위스키와 달리 도수가 40도 이하인 점도 특이했다. 골든블루를 부산 업체(구 천년약속)가 개발했다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됐다. 박 회장과 그의 사위인 김동욱 사장(現 골든블루 대표)은 술자리가 있으면 골든블루를 주문했다.

2011년 골든블루가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자동차 부품시장이 침체되자 신사업을 찾고 있던 박 회장과 김 사장은 골든블루를 떠올렸다. 위스키 시장을 조사한 후 인수를 결정했다. 토종 업체들이 힘을 못 쓰는 국내 위스키 시장에서 '역발상' 마케팅을 하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7년 후 현재 골든블루 매출은 10배 넘게 뛰었다.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보였던 글로벌 위스키 업체들은 오히려 골든블루의 전략을 쫓았다.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 골든블루 20년 서미트
1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골든블루는 지난해 약 1650억원의 매출을 달성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박 회장이 골든블루를 인수한 2011년(146억원) 이후 7년 만에 매출이 10배 넘게 뛰는 것이다.

골든블루는 2016년 임페리얼을 누르고 국내 2위 브랜드로 올라선 데 이어, 2017년에는 국내 위스키 시장에서 '절대강자'로 군림했던 윈저마저 누르고 그해 가장 많이 판매된 위스키 브랜드가 됐다. 토종 위스키 업체 중 수입 양주인 윈저와 임페리얼의 양강구도를 깬 것은 골든블루가 처음이다.

폐업 직전까지 내몰려 인수합병 시장에 매물로 나왔던 회사가 7년 만에 '반전 스토리'를 만든 건 독한 위스키의 도수를 낮췄던 제조 전략 때문이었다.국내 주류시장은 2010년 이후부터 독한 술을 지양하는 '저도주(酒) 열풍'이 불었다.

소주시장에선 소주의 도수를 낮춘 것도 모자라 연하게 마시는 '과일주'가 등장했고, 막걸리시장에선 과즙과 함께 탄산을 섞는 '탄산주'가 등장했다.

도수가 상대적으로 낮은 술인 맥주가 날개 돋힌 듯 팔리는 반면 40도가 넘는 위스키 시장은 갈수록 위축됐다.그동안 '위스키=40도'가 공식처럼 굳어진 데에는 스코틀랜드위스키협회(SWA)가 40도 이상만 스카치 위스키란 말을 쓰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글로벌 위스키 회사들은 양주의 정체성을 '고급화'와 '정통성'에서 찾았기 때문에 '스카치 위스키'라는 이름표를 포기할 수 없었다.

36.5도짜리 위스키를 만들어 양주시장의 저도주 트렌드를 주도한 골든블루의 '돌풍'에 글로벌 기업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이유는 도수를 낮추지 못한 '고집'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들도 양강구도에 균열이 생기자 각각 2015년(페르노리카)과 2016년(디아지오) 30도대의 저도주를 내놓고 골든블루를 쫓았다.
◎ 김동욱 골든블루 대표
김동욱 골든블루 대표는 "도수가 낮은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판단해 회사를 인수한 후에도 36.5도짜리 술로 밀고 나간 것이 적중했다"며 "골든블루를 '가볍고 부드럽게'라는 주류시장 대세에 맞는 제품으로 만들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또 하나의 파격은 '무(無)연산'에 있었다. 연산이란 위스키에 흔히 붙는 '12년산', '17년산', '25년산'을 말하는 것이다.

위스키는 보통 원액이 오크통에서 '머문' 기간을 기준으로 급이 나뉜다. 오크통에서 보낸 기간이 12년보다 짧으면 일반(스탠더드), 12년 이상 숙성되면 고급(프리미엄), 17년이 넘는 위스키는 슈퍼 프리미엄으로 분류한다.

숙성, 저장 기술의 발달로 가격대비 품질이 높은 무연산 위스키는 연산에 구애 받지 않고 블렌딩(혼합)이 가능하기 때문에 개성이 강한 맛을 지닌 제품을 만들 수 있어 다양한 소비자층을 공략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세계 위스키 시장도 연산 위주의 고급 위스키에서 편하게 즐기거나 소비자 개인의 취향에 따라 개성 있는 맛을 찾는 것으로 바뀌면서, 연산과 전통을 강조하는 스코틀랜드가 아닌 제2의 지역에서 생산되는 무연산 위스키들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는 게 트렌드다.

약 100년 전부터 위스키를 만들어 오기 시작한 일본은 산토리사의 무연산 위스키 '가쿠빈', '히비키 하모니' 등을 통해 세계적인 위스키 수출 국가에 등극했다. 미국에서는 버번 위스키를 활용한 꿀, 시나몬 향이 가미된 플레이버 위스키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급성장 하고 있다.

골든블루도 연산 표기를 과감히 버리고 '사피루스', '다이아몬드' 같은 보석을 상징하는 제품명을 붙였다. 연산을 쓰는 것이 위스키를 장년층이나 노년층의 술로 가두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김 대표는 "연산을 써서 고급 술을 지향하면 젊은 층이 접근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위스키를 중장년층의 전유물이 아닌 대중의 술로 각인시키기 위해 숫자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조상현 한경닷컴 기자(영상) doytt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