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산 절반 날려" vs "정부가 잘 막았다"…2030이 바라본 '가상화폐 광풍 1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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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 보호? 충분한 연착륙 유도했어야"“정말 투자자를 보호할 생각이었다면 연착륙을 유도했어야죠. 투자자들을 가스실에 집어넣고 셔터를 내린 셈이었습니다.”(김모씨·해외대학 재학)
"적절한 시기에 정부가 대체로 잘 대응해"
“전반적으로 적절한 시기에 대처한 것 같아요. 정부의 스탠스를 확실하게 보여줬고, 생각 없이 뛰어드는 투자자들 열기를 잠재우는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이모씨·대기업 근무)
지난해 가상화폐(암호화폐) 광풍 이후 1년이 흘렀다. 암호화폐 열풍 절정이었던 작년 초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 검토 발언이 나왔다. 이후 암호화폐 시장이 대세 하락기에 접어들면서 당시 정부 대처에 대한 평가는 긍정론과 부정론으로 양분됐다.암호화폐에 대한 정부의 본격 액션은 지난 2017년 9월 가상통화 관련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꾸리면서 시작됐다. 1년 넘게 지났지만 아직도 명확한 가이드라인이나 규제는 없는 상황.
암호화폐 광풍의 핵심은 2030 젊은층이었다. 한국금융투자자보호재단이 2017년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대의 22.7%, 30대의 19.3%가 암호화폐에 투자했다. 이들은 정부의 가상화폐 정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20~30대 4명의 일반인에게 물었다.◆ 유경험자에게 먼저 묻겠다. 암호화폐 열풍 당시 투자한 계기는.김모씨(28·중견기업 근무, 이하 김28)=재작년 12월 암호화폐 리플 가격이 올랐다는 기사를 봤다. 관심을 갖고 공부를 시작했다. 몇몇 암호화폐들이 추구하는 비전이나 비즈니스 목표가 혁신적이란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소액 투자를 시작했다.
김모씨(26·해외대학 재학, 이하 김26)=한동안 거품이라고 생각하고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다 2017년 11월쯤 비트코인 가격이 2000만원을 넘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떻게 암호화폐가 그렇게 높은 가격이 가능한지 궁금해져 알아보다가 투자까지 하게 됐다.
◆ 무경험자다. 암호화폐 열풍이 심했는데 투자할 생각이 안 들었나.이모씨(28·대기업 근무, 이하 이)=암호화폐가 실제가치를 반영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변동성이 매우 큰 것도 불안했다. 순간적인 유행이나 확 부풀어오르는 거품이라 느꼈다. 이 판에 들어가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안 들었다. 한 마디로 ‘불확실성’ 때문이었다.
박모씨(31·언론사 근무, 이하 박)=솔직히 혹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변에서 암호화폐에 투자했다가 잠도 못자고 폐인 생활하는 모습도 봤다. 본업에 집중 못하고 24시간 암호화폐 가격만 보고 있는 경우도 많더라. 치킨 값이라도 벌겠다며 단타 매매에 열 올리는 지인들, 작정하고 펌핑에 가담하는 일부 투자자들을 보면서 그래도 되나 싶더라. 환멸을 느꼈다.
◆ 다시 투자자들에게 묻겠다. 하락기인데 어떻게 투자하고 있나.김28=처음엔 암호화폐 가치를 믿고 소위 ‘존버(가격이 오를 때까지 계속 보유)’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암호화폐 가치가 실제보다 너무 높게 매겨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매도했다. 그 이후엔 암호화폐 시장에서 주목받는 트렌드에 맞춰 종목을 바꿔가며 투자하고 있다.
김26=존버하고 있다. 다만 마냥 기다리기보다는 사고 팔기를 반복하며 암호화폐 개수를 늘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2020년 비트코인 반감기(채굴량이 반으로 줄어드는 시기)가 온 뒤부터는 시장이 다시 주목받을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 무경험자들은 앞으로도 암호화폐 투자 계획은 없는지.
이=앞으로도 전혀 없다(웃음).
박=저점이라 생각될 때 암호화폐를 사고 싶은 생각은 있는데 적극적이진 않다. 정부 규제 기조가 여전하지 않나. 확실한 상승 모멘텀도 안 보인다. 더구나 일부 고래(거물)들에 의해 시세가 심하게 요동치는 것 같아서 안전한 자산인지 의문이 든다.◆ 지난 1년간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준 몇몇 정부 관계자 발언이 있었다. 거래소 폐쇄, 암호화폐 관계자 및 거래자 처벌 검토 등이 그랬다. 적절했다고 보나?
김28=잘못됐다. 갑작스러운 발언이었다. 하루 아침에 손해를 본 투자자들이 굉장히 많았다.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도 있었을 거다.
김26=진짜 투자자를 보호하려 했다면 연착륙을 유도했어야 한다고 본다. 너무 급진적인 처사였다. 기존 투자자들을 가스실에 집어넣고 셔터를 내린 셈이다. 거래소 폐쇄 발언 직후 전 재산의 절반 이상이 날아갔다. 나뿐 아니라 대부분 투자자들이 심각한 후폭풍에 시달려야 했다.
이=정부 발언의 내용과 타이밍을 놓고 봤을 때 나름대로 적절한 시기에 잘 대처했다고 평가한다. 정부 스탠스를 확실하게 보여줬다. 당시 투자자들은 그저 유행처럼, 도박하듯 너도나도 뛰어들었다. 거래소 폐쇄 검토 발언은 그러한 광풍을 잠재우기 위한 적절한 수준의 코멘트였다. 암호화폐 투기를 잠재우는 데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박=거래소 폐쇄 발언이 나온 때가 한창 암호화폐 가격이 뛰던 작년 초였다. 그 발언으로 시장이 심하게 요동쳤다. 정부 부처간 사인이 맞지 않아 곳곳에서 불협화음을 냈다. 그러면서 시장 변동성이 매우 심해졌다. 정부가 일관적으로 메시지를 내고 대응했어야 한다고 본다.
◆ 외국인 거래 금지정책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28=잘한 것이다. 외화 유출 문제에서 사실 암호화폐만큼 악용하기 좋은 기술이 없다.
김26=결국 외국인 거래 금지정책으로 인해 우리나라가 ‘갈라파고스화’ 됐다. 국내와 글로벌 시장이 따로 놀다 보니 작전세력이 갖고 놀기 좋은 시장이 돼버렸다. ‘김치 프리미엄(해외에 비해 국내 암호화폐 시세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현상)’도 외국인 거래 금지 이후 생기지 않았나.
이=외국인 거래를 허용하면 원화 유출 우려가 클 것이다. 암호화폐는 결국 일시적 붐이다. 암호화폐 시장이 갈라파고스화되는 문제보다는 국내 투자자 피해를 우려한 게 더 컸다. 정부로선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박=해외 투자자 제한으로 암호화폐 거래량이 급감했고 암호화폐 시장에서 한국이 갖는 영향력도 매우 약해졌다. 결과적으로 암호화폐 시장의 빠른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본다.◆ 은행권의 신규 가상계좌 개설이 사실상 금지되기도 했다.
김28=과도한 정부 개입 아닌가? 디지털 자산의 일종인 암호화폐가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킬지 누구도 모른다. 새로운 산업으로 성장할 수도 있고.
김26=정부가 액션을 취해야 하는 상황이었음은 이해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정부 차원 명확한 가이드라인은 내놓지 않고 은행을 규제하는 식은 아닌 것 같다
이=투기성 신규 자금 유입을 막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본다. 은행 신규 계좌를 막음으로써 너무 쉽게 암호화폐 투자를 하지 못하게 페널티를 준 것으로 보인다. 정책 자체가 옳거나 매끄러웠는지는 모르겠으나 투기 열풍을 잠재우려 한 정부 스탠스에는 동의한다.
박=대놓고 거래소 폐쇄하지 않는 대신 사실상 암호화폐 시장을 ‘고인 물’로 유도하는 정책이었다고 본다.
◆ 금융기관의 암호화폐 투자 금지정책은 어떤가.
김28=금융기관에서 투자해 산업 잠재성이 더 빨리 발굴될 수 있지 않았겠나. 돈의 흐름을 막아 산업 발전을 저해한 측면도 있다고 본다.
김26=투기 열풍이 불긴 했지만 금융기관의 암호화폐 투자를 전면 차단하기보단 적어도 연구개발(R&D) 목적의 투자 정도는 허용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는 게 맞지 않았나 싶다.
이=적절한 정책이었다. 금융기관이 암호화폐에 투자한다면 어떻게 되겠나. 일반 투자자들은 금융회사 신뢰도를 믿고 암호화폐에 투자하게 됐을 것이다. 리스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투자할 우려가 있고, 기관투자자들은 실체가 불분명한 이익에 대해 투자를 권유하고 금융상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격이 된다. 책임질 수 없는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다. 제도권 금융의 리스크마저 커질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박=금융기관 같은 기관투자자 진입은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해외에서도 기관의 암호화폐 투자가 보편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추진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된다.◆ 1년 넘게 암호화폐 관련 정부 가이드라인이나 규제는 나오지 않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김28=규제를 풀어주는 것과 규제 자체가 없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외국에서는 블록체인 산업을 국가적으로 밀어주는 경우도 보인다. 우선 가이드라인 초안이라도 발표하고 의견을 수렴해가며 신사업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26=정부가 투자자 보호나 산업 육성 의지를 갖고 있다면 우선 디지털 자산(암호화폐)에 대한 법적인 정의부터 내려야 할 것 같다. 1년 넘게 방치하는 건 투자자 보호나 산업 육성 구호가 허울뿐이었다는 걸 보여주는 반례다.
이=정부가 암호화폐 관련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행위 자체가 시장에는 암호화폐가 공식적이고 제도권 안으로 편입된 자산이라는 신호를 줄 수 있다. 지금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안 내놓는 것 자체가 메시지 아닐까. 의도적으로 정부가 손 놓았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물론 무조건 방치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신기술이나 4차 산업혁명에 뒤처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것 같다. 따라서 기존 암호화폐와는 별개로 산업 육성에 대한 지원은 필요해보인다. 현 상황대로라면 ‘기술 자체의 가능성’까지도 사행성으로 매도돼 사장될 것 같이 느껴진다.박=암호화폐가 무엇인지 정의가 이뤄지지 않으니 당연히 가이드라인도 법도 나올 수 없는 상황이다. 블록체인이 현재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혁신기술로 각광받는데 한 몸인 암호화폐를 외면으로 일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단 투기 세력 진정, 거래소 투명성 등 업계의 자정노력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단계적으로 정책을 수립해나가야 할 것이다.
김산하 한경닷컴 기자 san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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