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로만 끝난 현실문제 제기…'체념형 사회'의 한계인가

김희경 기자의 컬처 insight

사교육 문제 파헤친 'SKY 캐슬'
아동학대 다룬 '붉은 달 푸른 해'
안방극장에서 경각심 높였지만 과거와 달리 문제해결 공론화 없어
갈수록 심각해지는 사교육 문제를 다룬 드라마 ‘SKY 캐슬’. /JTBC 제공
첫 방송의 시청률은 1.7%였다. 종영을 4회 앞둔 현재 시청률은 19.2%까지 올라왔다. 2017년 방영된 tvN 드라마 ‘도깨비’가 기록한 케이블·종합편성채널 드라마 최고 시청률(20.5%)도 갈아치울 기세다. JTBC 드라마 ‘SKY 캐슬’은 말 그대로 장안의 화제다.

이 작품은 자녀들을 서울대 의대에 보내려 수단을 가리지 않는 학부모들의 뒤틀린 욕망을 다룬다. 여기엔 특이한 직업도 나온다. ‘입시 코디네이터’다. 이 직업을 가진 김주영(김서형 분)은 아이들의 성적은 물론 온갖 스펙, 심리상태까지 관리한다. 그는 학부모와 아이들의 불안한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든다. 입시 코디네이터는 현실에서도 존재한다. 이 사실을 몰랐던 대부분 시청자는 작품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이뿐만 아니다. 드라마엔 학업 스트레스로 절도를 일삼거나 부모에게 복수하고 싶어 한다는 자극적인 내용이 나온다. 그런데 이게 드라마만의 얘기가 아니라는 게 교육전문가, 정신과 의사 등을 통해 전해지며 큰 화제가 됐다. 그래서일까. 작품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드라마 결말을 추측하는 온갖 스포일러들이 떠돌아다니고 대본 유출 사건도 일어났다. 그런데 TV를 끄고 나선 더 씁쓸해진다. 현실에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교육이 정말 문제긴 문제야”라는 얘기를 식사 자리에서 하는 정도에 그친다.

‘SKY 캐슬’만 그럴까. 최근 드라마는 현실의 어두운 면을 더욱 클로즈업한다. 그러나 콘텐츠는 콘텐츠대로, 사회는 사회대로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작더라도 의미 있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체념형 사회’로 진입하면서 생긴 한계일까. 감당하기 힘든 문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가지만 가만히 보고만 있을 뿐 손은 쓰지 못하는 상태 말이다.

예전에 사회 문제를 다룬 작품은 대부분 영화였다. 더 일상적이고 보편화된 콘텐츠인 드라마에서 이를 다루기엔 지나치게 무거워 보였다. 그러나 이젠 틀에서 벗어나 현실을 고발하고 경각심을 높이려는 드라마가 많아지고 있다. 지난해 7월 종영한 SBS의 ‘시크릿 마더’는 ‘SKY 캐슬’에 앞서 사교육 문제를 다뤘다. 아동학대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들도 나온다.지난해 3월 방영된 tvN ‘마더’, 지난 16일 막을 내린 MBC의 ‘붉은 달 푸른 해’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주제들이지만 대중은 호평을 보낸다.

그러나 반응은 여기까지다.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현실로는 눈을 돌리지 않는다. 과거엔 좀 달랐다. 2010년 전후로 나온 영화 ‘도가니’ ‘이태원살인사건’ 때만 해도 사람들은 목소리를 냈다. 실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만한 조치들도 이뤄졌다. 물론 이 작품들은 특정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SKY 캐슬’ 등과 다르다. 하지만 지금은 특정 사건이든 사회 전반의 문제이든 사람들은 한발 물러서 있는 것 같다. 콘텐츠를 통해 받은 충격을 현실 해결의 의지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는 얘기도 물론 틀리진 않다. 하지만 온갖 문제를 떠안은 채 사회가 고착화되는 걸 바라보고만 있어야 할까.

드라마 속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은 “어머니, 저를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최근 일부 학원들은 이 대사를 패러디하며 입시 코디네이터들을 연결해 준다는 광고를 대대적으로 하고 있다. 이러다 현실에서도 입시 코디네이터의 말만 믿는 사람이 더 많아질 것만 같다. 우리가 전적으로 믿어야 할 것은 우리 자신, 그리고 드라마 속 아이들보다 더 힘들어하고 있을 TV 밖 우리의 아이들이다.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