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오재학 한국교통연구원장 "20년 前 GTX 구상…첫삽 뜨니 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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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은 기본권…이동 자유 넓혀야오재학 한국교통연구원장(61)은 교통학계의 ‘큰형’으로 불린다. 1982년부터 37년간 5000만 국민의 ‘발’인 교통을 연구했다. 수도권 시민의 출퇴근 문화를 바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유라시아 대륙 진출의 발판인 남북한 철도 연결 사업,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자율주행자동차 등 교통 현안에 대한 견해를 듣기 위해 지난 15일 세종시 조치원의 한 한식당에서 그를 만났다.
'카풀 갈등'은 도입단계의 진통 불과…자율주행차가 도시 구조 바꿀 것"
컴퓨터 폼 나 보여 교통연구 입문…대학 졸업 후 KAIST 전산센터 입사
英 유학길 올라 본격적으로 연구…박사과정 동안 경제적 궁핍 힘들어
선진국서 광역철도시스템 몸소 익혀
지역경제 활성화 위해 KTX 도입 강조…GTX로 국민 생활패턴 완전히 바뀔 것
37년간 연구 매진, '교통학계의 맏형'…러시아 잇는 1992년 남북철도 구상
자율주행차는 혁명, 2025년 실용화 전망…퇴임 후 개도국 교통정책에 도움 주고파
컴퓨터가 맺어준 교통과의 인연오 원장이 안내한 식당은 민어구이 전문점이었다. “민어요리를 평소에 즐겨 먹느냐”고 묻자 오 원장은 고향 얘기를 꺼냈다. “광주에서 나고 자랐는데 주변 목포에서 민어회를 즐겨 먹더라고요. 고향에 내려갈 때면 가족과 보양식으로 민어를 먹곤 했습니다. 고기가 쫄깃하고 담백하면서 맛있습니다.” 그는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지만 4년 전 세종에 내려온 뒤로 1년에 2~3번은 이 식당에 온다고 했다.
밑반찬이 식탁에 깔렸다. 단감장아찌 새송이버섯장아찌 수수부꾸미 녹두전 사과말랭이 등 전채요리는 민어요리를 먹기 전 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해파리냉채를 한 젓가락 입에 넣자 탱탱한 해파리 식감 사이로 알싸한 겨자 향이 입안에 퍼졌다.
1957년 태어난 오 원장은 광주에서 나고 자랐다. 6남1녀 중 넷째다. 어릴 적 공부를 잘했다. 중학교 시절 내내 전교 1~2등을 놓치지 않았다. 고교 평준화 직전인 1973년 서울로 올라와 당시 ‘엘리트 집합소’로 불린 경기고에 입학했다.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황교안 전 국무총리, 고승덕 변호사 등이 고교 동기다.“부모님이 공부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형들도 공부를 잘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광주 시골 동네의 자랑으로 불리던 그는 1976년 서울대 산업공학과에 입학했다.
전채요리를 비워갈 때쯤 민어구이가 나왔다. 60㎝ 정도 되는 민어를 기름에 바삭하게 튀겨냈다. 직원이 손으로 민어 뼈를 발라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웠다. 맛은 깊고 담백했다. 6일간 염장하고 숙성해 보리굴비처럼 생선 특유의 깊은 맛이 묻어났다. 비린내는 전혀 나지 않았다.
“어떤 계기로 교통 연구를 하게 됐느냐”고 묻자 오 원장은 교통과 동떨어진 컴퓨터 얘기를 했다. 지금은 흔하지만 당시엔 신문물에 가깝던 컴퓨터를 보고 매력을 느꼈다. 졸업과 함께 1982년 KAIST 전산개발센터에 입사했다. 이것이 교통 연구를 하게 된 계기가 됐다.“학부 시절 KAIST에 놀러갔다가 거기서 본 컴퓨터가 그렇게 ‘폼’ 나 보였습니다. 모니터 앞에서 작업하는 걸 보니 멋있기도 하고. 그때 세계은행에서 수행한 서울시 교통체계개선 프로젝트를 처음 맡으면서 교통 연구에 발을 들여놨습니다.”
교통 연구의 맛을 본 그는 1985년 영국으로 갔다. 서울시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한 영국 교수의 추천을 받아 유학길에 올랐다. 그곳에서 5년간 교통공학 석·박사 과정을 밟았다. 유학 시절은 고됐다. 사는 집은 33㎡의 방 한 칸 남짓. 변변한 수입 없이 이곳에서 아내와 신혼 생활을 했다. “공부도 공부지만 경제적으로 궁핍한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공부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아내가 ‘도대체 언제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냐’며 미워했지요.”(웃음)
“GTX, 주민 삶 바꿀 것”영국 유학생활 5년은 학자로서 값진 기간이었다. 선진 대중교통체계를 글이 아닌 몸으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매일 30분씩 지하철을 타고 학교로 갔다. 영국의 환승체계와 광역철도 시스템을 직접 타면서 익혔다. “영국 국민은 대부분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합니다. 도심에서 70㎞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이나 도심에 사는 사람이나 통근시간에 큰 차이가 없습니다. 50㎞ 밖에서도 급행철도로 한번에 도심에 닿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가 추진하는 GTX 개념이 20~30년 전부터 있었던 겁니다.”
이런 경험은 1992년 교통연구원에 입사한 뒤 값진 연구 재료가 됐다. 고속철도 활성화, 복합환승센터 건립 등을 주로 고민했다. 1994년 일본 도쿄공업대에서 1년간 조교수로 일한 시기에도 그는 신칸센 등 대중교통을 타며 선진 교통체계를 익혔다. KTX로 각 도시를 이어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는 구상은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2009년 발표한 ‘KTX 경제권 개발방안’은 행정안전부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이 연구도 신칸센역 주변으로 백화점 등 대규모 상업·업무시설이 들어선 일본에서 영감을 얻었다.
오늘날 GTX와 같은 광역급행철도망 구축도 1990년대 중반부터 강조해 왔다. “영국 일본에서 급행철도를 타보면서 철도망이 도시 활성화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는 걸 몸소 깨달아서 도입을 계속 주장했습니다. 벌써 20년 전 얘기인데 이제라도 A노선이 착공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GTX가 도입되면 수도권 주민의 이동 반경이 더 넓어지고 국민 생활 패턴이 완전히 바뀔 것입니다.”
“자율주행자동차는 혁명”
30년 넘게 교통 외길을 걸어온 오 원장은 자율주행차, 남북 철도 등 폭넓은 분야를 연구했다. 교통연구원에서 모든 연구본부의 본부장을 거치고 부원장을 지냈다. 남북 철도는 그가 1992년부터 연구한 주제다. 평양을 방문해 북한~중국~러시아를 잇는 ‘두만강 개발 종합계획’을 연구했다. 2025년부터 실용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자율주행차에 대해 그는 ‘혁명’이라고 평가했다. 프랑스혁명이 왕정을 공화정으로 바꾼 것처럼 자율주행차가 도시 구조 자체를 바꿀 것이란 이유에서다. 오 원장은 “카풀 도입을 두고 생기는 택시업계 불만은 기술 도입 초기 단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에 불과하다”며 “자율주행차 도입 후엔 제조업 등 산업구조가 혁신적으로 변할 뿐 아니라 교통혼잡, 대기오염 등 현대 교통의 고질병도 해결될 것”으로 내다봤다.
민어구이가 바닥을 드러낼 때쯤 그에게 “교통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기본권’이라고 했다. 오 원장은 “교통은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수단”이라며 “교통망이 열악하거나 운임이 비싸면 이동이 제약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2년 뒤 원장 퇴임 후에는 베트남이나 우즈베키스탄 같은 개발도상국에 가서 교통 정책 수립에 기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밤 9시가 되자 종업원이 “문 닫을 시간이 됐다”고 했다. 오 원장은 “교통연구원이 얼마나 이로운 연구를 하는지 잘 소개해달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한국교통연구원은…
교통개발연구원이란 이름으로 1986년 개원했다. 교통·물류 정책 및 기술을 연구개발하는 싱크탱크다. 스마트시티 교통, 자율주행자동차와 미래 차, 광역급행철도, 고속철도, 민자철도, 항공안전, 드론(무인항공기) 등과 관련한 연구활동을 한다.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복합환승센터 개발계획, 고속철도건설 기본계획 등이 그간 수행한 주된 프로젝트다. 2005년 한국교통연구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2011년에는 3년 연속 최우수 연구기관에 선정되기도 했다. 세계은행 등 국내외 200여 개 유관기관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교통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있다.
■약력
△1957년 광주 출생
△1976년 경기고 졸업
△1979년 서울대 산업공학과 졸업
△1981년 서울대 산업공학 석사
△1982년 KAIST 연구원
△1986년 영국 런던대 교통공학 석사
△1991년 런던대 교통공학 박사
△1992년 한국교통연구원 입사
△2009년 KTX경제권포럼 사무총장
△2011년 한국교통연구원 부원장
△2017년 제14대 한국교통연구원 원장■오재학 원장의 단골집 송하한정식
수라상에 올랐던 민어요리 전문점
세종시 조치원읍 신안리에 있는 송하한정식은 민어구이 전문점이다. 농사를 짓던 하경수 씨가 2002년 식당을 열었다. 솟을대문으로 들어가면 아담한 마당에 고즈넉한 기와집이 들어서 있다.
주메뉴는 민어구이정식과 자연산버섯탕이다. 민어는 예부터 수라상에 오를 만큼 귀한 식재료로 꼽혔다. 비린내가 전혀 없고 담백하며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보통 회나 탕으로 먹는 민어를 기름에 튀겨낸 것이 이 집 특징이다. 부산에서 잡은 60~70㎝ 민어를 직송받는다.
농사를 지어온 식당 주인답게 대부분 반찬 재료는 직접 재배한다.방풍장아찌 새송이버섯장아찌 단감장아찌 작두콩꼬치 수수부꾸미 녹두전 사과말랭이 감자떡 등 20여 가지 밑반찬이 민어와 어우러져 풍미를 더한다. 직접 삶아 짠 과실즙도 별미다. 수확한 포도 딸기 복숭아 등을 재료 상태에 따라 적절히 섞어 만든다. 하씨는 “선친 고향인 영남에서는 제사상에 주로 민어를 올렸는데 이에 착안해 메뉴를 구성했다”고 말했다. 민어는 크기가 커 3인상이 기본이다. 가격은 3인 6만9000원, 4인 9만2000원이다.
세종=양길성/서기열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