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기는 트럼프, 느긋한 김정은…미북 핵협상 동결에 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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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핵보유국 용인, 장기화 최악의 시나리오 우려미국과 북한이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북한의 핵연료 물질 및 핵무기 생산 동결에 초점을 맞춰 협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월 말 예정된 2차 미·북 정상회담이 북한의 완전한 핵 폐기가 아닌 핵 동결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 대 일부 대북제재 완화로 흐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19일(현지시간) 미·북 협상과 관련해 브리핑을 받은 여러 국가의 관리들을 인용해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북한이 핵연료(nuclear fuel)와 핵무기 생산을 동결할지가 북한과 논의 중인 한 가지 주제”라며 “이러한 조치는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북한의 핵무기고 증강을 중단시킬 수 있다”고 보도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전날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것(비핵화)이 긴 과정이 되리라는 것을 항상 알고 있었다”며 “그것을 하는 동안에는 위험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 위험을 줄이고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 구축 능력을 줄이기를 원한다”고 말해 2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핵·미사일 능력 동결이 논의될 가능성을 내비쳤다.미국의 이같은 태도 변화는 트럼프 행정부가 직접 위협으로 느끼는 핵과 ICBM 역량을 ‘동결’하는 쪽으로 협상을 이끌면서 미국 내부의 비핵화 협상 반대 여론을 잠재우고 북한도 실질적인 조치를 이끌어내기 위해 중간 목표를 상정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이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에 도달하기까지 단계적 접근이 불가피하다고 인식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1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핵실험은 없지만 사실상 북한의 핵프로그램은 그대로 작동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며 “미국이 북한에 평양공동선언에서 내놓은 안들을 포함해 동결 요구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일 신년사에서 언급한 ‘더이상 핵무기를 만들지 않겠다’고 한 발언을 미루어 볼때 양측의 '동결'에 대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가능성도 높다.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2년을 맞아 정치적으로 부각하고 있는 ‘외교적 치적’과 연관돼있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시간은 북한에 유리하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일종의 성과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외교가에서는 미국이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쇄와 ICBM 폐기를 대가로 개성공단·금강산 재개 등 일부 제재완화를 해주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관건은 ‘동결’을 하더라도 비핵화 과정에서 실질적인 의미를 가지려면 철저한 사찰·검증과 결합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비핵화 ‘검증’을 놓고 북한과 국제사회가 갈등을 겪었던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또 핵동결 단계가 장기화할 경우 사실상 북한의 ‘보유핵’을 인정하는 상태가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은 우려로 남게 된다. 핵 동결 단계를 설정할 경우 최종적인 핵폐기 약속을 전제로 하는 동시에 다음 단계로의 신속한 이행을 담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미·북은 2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이틀째 실무협상을 이어갔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전날 오후부터 이날까지 스톡홀름 외곽에 있는 휴양시설인 하크홀름순트 콘퍼런스에서 이틀째 두문불출한 채 합숙 담판을 벌였다. 양측은 고위급 회담 결과를 토대로 비핵화 조치와 상응 조치의 구체적 이행방안을 놓고 의견을 개진하며 조율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양측은 21일까지 실무협상을 진행할 계획이나 협상이 연장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은 우군은 중국과 밀착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북한의 대외 선전 매체 ‘조선의 오늘’은 21일 ‘불패의 친선관계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오랜 역사적 뿌리를 가지고 있는 조중(북중) 친선은 오늘 새로운 발전단계에 들어서고 있다”고 강조했다.이수용 노동당 국제 담당 부위원장이 이끄는 북한 예술대표단이 오는 23일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절(春節·설)을 앞두고 베이징(北京)에서 공연을 열 예정이다. 북중간 밀착은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이 중국과 공조를 대미 압박에 활용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