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혁신성장, 기업에 물어봐야

"소득주도성장 기반 혁신성장 불가
親시장 정책으로 기업가정신 고취
기업이 신사업에 도전하게 도와야"

박성현 < 前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신년 기자회견 연설에서 ‘경제’(35회), ‘성장’(29회), ‘혁신’(21회) 순으로 많이 언급하며 경제를 올해 국정운영의 최우선 순위에 놓고 혁신성장에 매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의 주요 정책기조는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소득주도성장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법인세 인상,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주 52시간 근로제 강행, 주휴수당 지급 등으로 인해 고용참사란 심각한 부작용이 빚어졌고, 이에 대한 논쟁이 격화되면서 상대적으로 혁신성장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번 연설문을 보면 소득주도성장 기조를 바꾸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면서도, 기술개발로 기업의 혁신을 촉발해 경제 발전을 꾀하겠다는 ‘혁신성장’에 무게를 두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혁신은 “추격형 경제를 선도형 경제로 바꾸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 새로운 시장을 이끄는 경제”임을 밝혔다.그럼 소득주도성장을 추구하는 동시에 혁신성장을 이끌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이 두 성장 정책은 동시에 추구하기 어렵다. 다음 세 가지 이유를 살펴보면 이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첫째, 소득주도성장이 정부 주도로 저소득층과 사회적 약자층의 소득을 늘려 경제성장을 주도하겠다는 ‘수요’에 초점을 맞춘 분배 위주 정책이라면, 혁신성장은 민간주도의 기업 혁신을 촉발해 경제 발전을 이루겠다는 ‘공급’ 중심의 성장 정책이다. 소득주도성장은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다. ‘큰 정부’를 지향하면서 세금을 많이 거둬 나눠주는 데 집중하고, 경직된 관료사회를 유지하면서 정부가 산업 활동을 지휘한다. 반면 혁신성장은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 필요 없는 규제를 가능한 한 없애고, 산업 활동은 기업에 맡기는 시장경제 원칙을 따르는 것이다. 따라서 이 두 성장정책은 공존하기 어렵다.

둘째, 혁신성장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려면 창의적인 인재란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과학영재고, 특수목적고(과학고, 외고, 국제고, 예고 등), 자율형 사립고 같은 분야별 엘리트 교육이 필요하다. 이런 고등학교들이 입시 위주 교육에 매몰됐다는 비판도 많지만, 일반 고등학교보다는 확실히 우수한 인재를 육성하고 있으며 혁신성장을 위한 인재를 배출하는 산실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를 주장하는 현 정부는 엘리트 교육을 배척하고 교육 평준화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특수목적고나 자율형 사립고 등도 대폭 축소하려 하고 있다. 우수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철학에서도 두 성장 정책 간 간극이 크다.

셋째, 민간 주도의 혁신 성장에 가장 큰 동력은 기업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추구하면서 무리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높은 상속세 유지, 반(反)기업·반재벌 정책 등으로 기업 활동을 크게 위축시키고 있다. 시장 친화적인 정책을 펴서 기업가정신을 고취하고, 기업인들이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신사업에 도전하도록 환경을 조성하지 않으면 혁신성장은 불가능하다.혁신성장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폐기해야만 현실적으로 가능해질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이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철학이라는 점에서 혁신성장은 단순한 정치적 구호에 그칠 공산이 크다. 궁극적으로 국민을 잘살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실패를 경험한 소득주도성장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전면 수정하고 혁신성장에 힘을 모아야 한다. 과학기술 진흥, 기업의 기술개발, 기업가정신 고취, 활발한 창업 활동 등으로 국내 경제의 파이를 크게 키우는 것을 우선시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공정하게 나누는 것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의 혁신을 위한 반전 기회를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